한 조간신문을 보니 요즘 배추를 심은 농민들의 시름이 깊다고 합니다.(조선일보,2011.4.18) '배추값이 좋다기에 수박 심던 밭에도 몽땅 배추를 심었어요. 이제 배추가격이 폭락한다네요. 농사가 잘돼도 속맘은 온통 숯검정입니다.' 한 농민의 말입니다.
지난해 가을 이후의 '배추 파동'. 배추값이 폭등하는 모습을 본 많은 많은 농민들이 배추 심기에 나섰습니다. 배추와 수박을 반반 정도 심던 농민들이 수박은 포기하고 모두 배추를 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배추가 시장에 출하될 4월말과 5월초에 배추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반대로 재배한 농민이 크게 감소한 수박은 '금값'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개인 개인들은 합리적으로 열심히 했는데 국가경제 전체로는 '재앙'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대공황 당시 개인들이 모두 소비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 나라경제 차원으로는 불황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든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끔찍했던 경험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만 의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나왔고 그것이 케인즈식의 적극적인 정부개입으로 현실화되었지요. 케인즈식 개입정책은 지금까지도 논쟁이 계속되는 주제이지만, 어쨋든 경제에는 '미시경제' 뿐 아니라 '거시경제'도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게된 계기가 됐습니다.
가격 폭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배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농민들이 고수익을 기대해 배추를 심고 열심히 일해 풍작을 만들었는데 정작 시장에 내놓고 보니 과잉공급으로 배추가격이 폭락합니다. 운송비도 안나와 밭을 뒤엎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농민들이 재배를 줄인 수박은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크게 오르지요.
거시적으로 우리경제 전체에 특정 시점에서 배추와 수박이 얼마나 심어졌는지 알기가 쉽지 않고, 또 설사 알 수 있다고 해도 누군가가 농민들이 심는 모든 농작물의 물량을 적정하게 조정해주거나 강제로 배분해주기도 어렵습니다. 정부가 '지금 배추가 금값이니 절대 배추를 심지 말고 다른 작물을 심으라'고 '조언'해도 수용하지 않는 농민들이 많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발생하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자주 목격하는 모습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투매할 때 사고, 모두 사려고 달려들 때 팔라'는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의 '지혜'처럼, 배추값이 폭등해 너도나도 배추를 심을 때는 절대 배추를 심지 말고 다른 작물을 심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주식시장이건 부동산 시장이건 농작물 시장이건, 현실에서 그렇게 '거꾸로 가기'를 선택하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어려운 문제입니다.
From 예병일의 경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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