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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pril 21, 2016

[Zack BookCafe]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2016 02

1부 : 리더는 정수리가 차가워야 한다. 

企 [바랄 기] : 빠르게 가기보다 바르게 가라.
바쁘다는 것을 뜻하는 한자 망(忙)을 살펴보라. 마음 심(心)과 망할 망(亡)이 합쳐져 있다. 도망가는 사람의 마음 또는 마음이 도망가 사라진 상태라 풀이할 수 있다. 기업가를 영어로 'businessman', 한자로는 '企業家'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어보다는 하나 표현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맨은 말 그대로 바쁜(busy) 사람이다. 반면에 기업가란 어떤가. 기업가의 기(企)는 바란다는 뜻이다. 사람 인(人)과 그칠 지(止)가 합쳐져 있다. 글자 구성에서도 벌써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가. 사람이 멈추어 발돋움하고 멀리 바라보는 모습이다. 바쁠 망(忙) 자를 볼 때보다 한결 그윽한 느낌이다. 기(企)란 글자에는 성찰하는 의미가 담긴 반면, 비즈니스맨은 '바쁘게'만 부각된다. 동분서주하는 황망함만이 느껴진다. p18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넘쳐날수록 필요한 것은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다. 차에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모두 필요하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공포의 흉기일 뿐이다…..  당신의 브레이크는 안전한가? 도망가는 사람처럼 늘 쫓겨 마음이 망(忙)한 상태는 아닌가? 바르게 가고 있는가, 빠르게 가고 있는가? p19

規則 [규칙] : 법처럼 무섭지 않고, 덕처럼 무르지 않은
법으로 겁을 주지도 않고, 덕으로 시간을 지체하지도 않으면서 양수겸장(兩手兼將)의 효과를 누리는 방법은 없을까? 이때 택할 수 있는 대안이 규칙(規則)을 바꾸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올바른 규칙은 법의 팍팍한 면과 덕의 완만한 면을 보충하며 변화를 촉진한다. 정(政)에서 강제력(攵) 없이 정(正)하게 한다. p22

규칙(規則)의 어원을 살펴보자. 규(規)는 성인 남자(夫)가 보는 시각(見)이란 뜻이다. 칙(則)은 조개 패(貝)와 칼 도(刂)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서 패(貝)는 솥 정(鼎)을 뜻한다. 문자를 청동솥에 칼로 새긴다는 뜻이다.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 중요한 서류를 종(鍾)이나 솥에 새겨 넣었던 당대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p22

조직에서든 룰을 창조하는 이가 승자가 되고 리더가 된다 지금의 국면을 바꾸고 싶은가? 덕은 답답하고, 법은 빡빡해서 고민인가? 그렇다면 '성과 게임'의 규칙을 바꿔보라. 그것이 정(政)에서 강요(攵, 매질할 복) 없이 자발적으로 변하게 하는 리더십의 비밀이다. 자(ruler)를 가진 자, 만드는 자가 진정한 통치자가 되는 법이다. p26

德 [덕 덕] : 곧게 가고자 하는 마음
덕(德)의 일부인 직(直)에서 눈 목(目) 위의 표시는 물건이 곧은지 아닌지 눈앞에 무엇인가 대고 자세히 측량해본다는 뜻이다. 곧은지 여부를 따져야 하는 것은 군자가 늘 가져야 하는 됨됨이다. p28

신뢰를 뜻하는 영어 단어 'trust'의 어원은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trost'에서 연유됐다. 이 단어의 동사형인 'entrust'는 '맡기다.' '위탁하다'라는 뜻이다. 편안함의 의미가 더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는가. 신뢰란 한마디로 믿고 따르고, 맡기고 위탁해도 편안해 뒷골이 당기지 않는 것이다. 지금 당신은 사람의 말로 신뢰를 쌓고 있는가(信), 아니면 으르렁거리며(狺, 으르렁거릴 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가? p40

臣民 [신민] : 무엇이 그들을 고개 숙이게 하는가
신하 신(臣]은 원래 노예를 뜻했다. 후대에 와서 왕 앞에서는 결국 누구나 아랫사람인 동시에 노예와 마찬가지이므로 절대복종의 의미가 투영돼 신하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사람이 똑바로 서 있을 때에는 눈 모양이 가로이지만 고개 숙인 사람의 옆 모양을 보면 눈이 세로 형태다. 그래서 눈을 세로로 표현한 것인 신(臣)이다. P41

백성 민(民)은 이보다 더 비참하다. 한쪽 눈을 날카로운 도구로 찌르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한 포로로 구성된 노예들을 나타낸 글자다. 전쟁노예가 된 포로들은 승자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력은 남겨두고 전투력만 없애기 위해 노예의 한쪽 눈을 상하게 하여 거리 감각을 잃게 했다. p43

이와 달리 노려볼 간(艮)은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돌려 노려보는 모습'을 그린 글자다. (주인에게) 눈 똑바로 뜨고 마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존 질서에 어긋난다.  그래서 간(艮) 자가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의미가 부정적이다. 한계 한(限), 어려울 간(艱), 원망할 한(恨), 다툴 흔(很) 등이 예다. P43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붙을 때 흔히 "어디서 눈 똑바로 쳐다보냐"라고 한다. '눈치만 있어도 어디서 먹고산다'고도 한다. 신(臣)과 민(民)을 보면 사람의 당당함은 똑바로 바라보는 눈에서 오고, 비굴함 역시 내리뜨는 눈을 통해 드러난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명줄이 무서워 눈을 똑바로 뜨지 못했다면 요즘은 밥줄이 무서워서 눈을 내리깐다. 사슴이 목이 길어 슬프다면, 신하는 눈 한 번 똑바로 뜨지 못해 애처롭다. p44

水 [물 수] : 언제나 빈 웅덩이부터 채운 후 흐른다. 
물 수(水)는 물이 흘러가는 모양의 상형이다. 가운데 큰 물줄기가 흐르고 양쪽으로 작은 물줄기라 흐르는 모습이다. 보통 강(江)이나 하(河)의 지류를 일컫는다. 강(江)에는 '반듯하다'라는 뜻의 공(工) 자가 붙어 물줄기가 비교적 곧은 것, 하(河)는 물 수에 가(可)를 붙여 굽는다는 뜻이 있다. 양자강(揚子江)은 곧게 흐르는 물이고, 황하(黃河)는 굽이쳐 흐르는 물이다. 수(水)보다 작은 것은 내(川)다. 양쪽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말하다. P45

노자는 물로부터 배워야 할 덕을 3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 둘째, 흐르는 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는다. 즉 조화다. 산이 막으면 돌아가고 큰 바위를 만나면 나누어 지나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난 다음 뒷물을 기다려 앞으로 나아간다. 셋째, 물은 늘 아래로 흐른다. 즉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 소외된 곳으로 흐르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고, 부드러운 물이 결국 강한 것을 이기게 되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고, 그러기 위해 아래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겸손함, 그것이야말로 물의 핵심 역량이다.  p49

忠 [참마음 충] : 흔들리는 마음에 깃발을 꽂는 것
걱정 환(患)을 보자. 꿸 관(串)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관(串)은 생김새에서 볼 수 있듯 산적, 어묵 같은 것을 꿰어놓은 모양이다. 마음에 시름과 걱정이 꼬챙이처럼 꽂혀 잠시도 헤어나지 못하니 얼마나 스트레스이겠는가. p50

충성이라 하면 흔히 '하라면 해'의 일방적 맹종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충성은 맹종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다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먼저 열성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남에게 충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p51

충(忠)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돼 있다. 중(中)은 해(日)의 변형이라는 설도 있고,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기 위해 장대를 달아놓은 판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씨족을 표시하기 위해 깃발에 상징 부호를 그려 넣었다는 <주례(周禮)>의 기록을 볼 때, 이는 씨족을 상징하는 깃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과거에는 집단 안에 중대사가 있으면 넓은 터에 먼저 깃발을 세우고 민중을 집합시켰다. 깃발이 꽂힌 곳이 중앙이자 중심이었다. 이처럼 중(中)은 단지 가운데 위치를 정하는 것을 넘어 기준과 표준의 의미를 지닌다.  심(心)은 '심장'의 상형이다. 중국인들은 생각이나 감정이 모두 머리가 아닌 심장에서 나온다고 여겼다.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심장이다. 그 마음에 중(中), 기준의 깃발을 꽂는 것이 바로 충(忠)이다. 충(忠)을 가질 때 사람은 오르락내리락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걱정의 꼬치구이 혹은 전기 통닭구이가 되는 환(患)에서 벗어나 평정을 회복할 수 있다.  p52

疑 [의심할 의] : 여우는 의심이 많아 결단하지 못한다
의사결정 장애를 일으키는 의심할 의(疑)의 생김새를 살펴보자. 이 글자는 '비수 비(匕) + 화살 시(矢) + 소 우(牛) + 발 필(疋)'의 조합이다. 이 4가지 요소에서 어떤 이야기가 연상되는가. 비(匕)는 지팡이를 뜻하고, 갑골문에서  화살 시(矢)는 소 우(牛)를 가르킨다. 발 필(疋)은 멈춰 헤아리는 모습이다. 즉  갈림길에서 자신의 소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에서 의(疑)라는 글자가 나왔다. p54

리더에게 조심성과 신중함은 필수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조심성'을 지나치게 발휘하다가는 적시의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일찍이 공자도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노나라 대부 계문자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3번씩이나 생각한 다음에야 실행에 옮긴다"는 마을 듣고 "두 번 정도만 고려하면 괜찮다(再斯可矣)"고 했다. 완벽을 추구하느라 지나치게 신중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 판단이 섰으면 마음속에 있는 의심을 지워내고 과감히 실행할 차례다. p57 

미국의 전 국방장관 콜린 파월은 "정보의 범위가 40~70% 사이에 들면 직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라고 했다. 맞을 기회가 40% 미만인 정보라면 움직이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100% 확실한 정보를 갖게 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의사결정을 하다 보면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는 수도 많다. 대개의 결단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크든 작든 리스크를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시간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결정 기준과 원칙이 명확한가 여부다. p57

煩 [번잡할 번] : 정수리가 뜨거우면 옳은 결정을 할 수 없다 
번거로울 번(煩)의 글자 모양이 이유를 설명해 준다. 번은 정수리(頁,머리 혈)에 열(火)이 나는 상태다. 말 그대로 스트레스 상황이다. 정수리에 열이  펄펄 나서 뜨거운데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말 그대로 머리에 열이 나는데 머리를 식히지 않고 되겠는가. 번(煩)은 우연히도 'burn'과 음이 같다.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번다(煩多)하면  번 아웃(burn-out) 증후군에 걸리게 된다. p59

활시위를 잔뜩 당긴 채 그대로 두면 늘어져 탄력이 없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허구한 날 팽팽하게 당겨진 채 살다 보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바빠도 이완된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충전 타임을 가진 사람과 방전만 하는 사람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p62

休 [쉴 휴] : 혹사보다 호사가 창조적이다.
쉴 휴(休)는 글자 그대로 사람(人)이 나무(木) 밑에서 쉬는 모습이다. 마을 길목을 지키고 선 커다란 미루나무 아래에서 부채질하며 한가롭게 쉬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겨를 가(暇)는 날 일(日)과 빌릴 가(叚)가 합쳐진 글자다.  휴가는 스스로에게 겨를을 줘서 여유를 가지는 계기다. 이런 점에서 휴(休)는 그칠 정(停)과는 다르다.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는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p65 

베스트셀러 <몰입의 즐거움>을 통해 행복에 이르는 과정을 널리 알린 미하이 칙센 트미하이는 "자유시간을 즐기는 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별다른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여가가 생겨도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것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기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유시간을 즐기기가 일하기보다 어렵다. p67

懼 [두려워할 구] : 새가슴으로 쫄지 말라
두려워할 구(懼)는 마음 심(心)과 놀랄 구(瞿)로 이루어졌다. 마음(心)으로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瞿)는 의미를 가졌다. 새는 일부 맹금류를 제외하고는 먹이사슬이 약자여서 언제 포식자에게 잡아먹힐지 몰라 항상 경계한다. 조금만 낯선 소리가 들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을 둘러본다. 볼 관(觀)도 황새 (雚,황새 관)가 눈을 크게 뜨고 있는(見) 모습을 본뜬 글자다. 흔히 말하는 '새가슴'의 상태가 바로 구(懼)다. p83

총각네 야채가게의 이영석 사장은 "세상의 일은 3가지로 나뉜다"라고 말한다 내가 할 일, 상대가 할 일, 그리고 하늘이 할 일이다. 그는 상대가 할 일, 하늘이 할 일을 걱정하고 안될까 봐 새가슴이 돼 내 일을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걱정하느라 애면글면 '새가슴'이 돼 걱정하느니, 내가 할 일에 집중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바로 리더가 가져야 할 진정한 용기다. p85

2부 : 리더는 살피고 궁리하는 자다

愚 [어리석을 우] : 나를 낮출수록 사람이 보인다
어리석을 우(愚)는 긴꼬리원숭이 우(禺)와 마음 심(心)이 합해진 글자다. 이에 대해 재미있는 해석이 있다. 긴꼬리원숭이의 꼬리가 유독 긴 것은 숲을 지날 때 꼬리를 들어 동료들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원숭이들은 집단생활을 하며 친화력이 강하다. 친화력을 강화하려면 자기를 낮추고 부족한 듯 보여야 한다. 이런 화합의 마음 때문에 우(愚)에 음뿐 아니라 뜻에서도 우(禺)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리석음이 협력하는 마음을 낳는다는 것이다. p94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기 어려워한다. 심지어 그 사실을 감추리 위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지어내기도 한다…..    이 같은 인간의 본성을 거슬러 어리석음을 받아들이고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발전의 출발점이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스승이 불편의 진리를 가르쳐 준다 해도 소용없다. p96

知 [알 지] : 화살처럼 빠르게 알아들을 수 있는 것
지(知)를 인수 분해하면 '화살 시(矢) + 입 구(口)'다. 화살의 대표적 속성은 빠름의 속도, 과녁을 뚫는 관통, 두 가지다. 이 때문에 지(知)의 자원에 대해서도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말귀를 알아듣는 것도, 그것을 이해해 말로 표현하는 것도 쏜살같이 빠른 것이 바로 '아는 것'이란 설명이다. 두 번째는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듯 날카롭게 판단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그러나 지(知)의 글자 원리에서 강조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심도다. 지식이 지(知)라면 지(智, 지혜 지)는 세월(日)이 더해져 숙성된 지혜라는 해석도 여기서 비롯된다. p98 

工夫 [공부] : 노력과 시간이 모두 필요한 작업
공부란 훌륭한 사람(夫, 사내, 지아비 부)을 만드는(工) 수련 과정이란 뜻이다. p104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혁신의 공부를 게을리할 때 바로 정체와 후퇴가 온다. 공부는 고문에 가까운 공력이 필요한 동시에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과정에서 틈을 짜내해야 하는 별도의 여가활동이기도 하다. 당신은 명실상부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功夫'가 되기 위해 얼마나 '工夫' 하고 있는가? p106

習 [익힐 습] : 하수가 고수가 되는 유일한 방법
습(習)은 알을 깨고 나온 어린 새가 날개(羽 깃 우)를 퍼드덕거리며 자주 나는 것이다. 즉  '나는 법은 이런 거구나' 하고 머리로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몸으로 익히기 위해 실행해보며 끊임없이 퍼드덕거린다는 뜻이다. 깃 우 밑의 부수는 날 일(日)로 보아 '해 아래에서 여러 번'으로 풀이하거나, 또는 스스로 자(自)의 모양이 변해 백(白)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P117

지금 혹시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려 하지 않는가. 새의 날갯짓을 보라 스스로 날기 위해 수백 번이고 연습하지 않는가.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익혀야 내 것이 된다. '익숙하다'와 '익히다'는 뿌리가 하나다. 익히지 않고서는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 P1118

慣 [버릇 관] : 습관을 조심하라, 당신의 운명이 된다.
관(慣)은 버릇이란 뜻을 가진 글자로, 옛사람들은 버릇을 마음에서 비롯되는 행위로 보았다. 그래서  마음 심(心)이 있다. 관(慣)은 발음 요소로 보는 경우도 있고, 동전꾸러미를 하나로 꿰 놓은 듯 일관(一貫)된 행위를 하는 버릇이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P119

생각을 조심하라. 그것이 당신의 행동이 될 수 있다. 
행동을 조심하라. 그것이 당신의 습관이 될 수 있다.
습관을 조심하라. 그것이 당신의 성격이 될 수 있다. 
성격을 조심하라. 그것이 당신의 운명이 될 수 있다. P120

우리의 행동은 작은 습관들이 덩어리져 만들어진다. 뇌 속에서 개별 행동의 '회로'가 만들어지는 데는 3주, 이 행동이 반사적으로 나오게 되는 데는 6주, 완전히 자신의 습관으로 굳어지는 데에는 10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처음에는 힘들지언정 의식적으로라도 특정 행동을 반복하게 되면 석 달 남짓한 기간 후에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단, 습관은 양날의 검이다. 좋은 습관은 삶과 조직을 업그레이드 시키지만, 나쁜 관성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후퇴시킨다. P121

實行 [실행] : 꿈을 위해 길을 떠나는 사람
한자어 '實行'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열매 실(實)의 옛 글자는 집 면(宀]과 밭 전(田), 조개 패(貝)로 구성되어 있다. 집 안에 곡식과 화폐가 가득 들어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實의 원래 뜻은 집안에 곡물이 '가득 차다'이다.  한편 갑골문에서 갈 행(行)은 사람들이 항상 다니는 사거리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길'이란 뜻이다. 이것이 후대로 오면서 '거리', '가다', '움직이다'의 뜻이 파생되었다.  p123

이 두 글자의 뜻풀이를 합치면 實行은 '집안에 곡물과 재물이 가득 차게 하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성과(成果)가 들어간 것에도 씨앗을 뿌리는 행위가 있고서야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成果는 實行과 일란성 쌍둥이다. 뿌려야 거둔다. 움직여야 생기는 것이 있다. 實行이라는 글자에는 이처럼 인과응보의 법칙, 나아가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 길을 떠나는 꿈과 의지가 담겨 있다.  p123~4

野 [들야] : 광야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살아남는다
들 야(野)는 마을(里)과 확연히 구별되게 커다란 나무(子)가 우뚝 서있는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보편적으로 野는 마을과 떨어져서 꾸미지 않는 본래 모습의 들, 벌판을 가르킨다. P128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이다. 안전지대에 적당히 머무르고자 하는 욕망이다. 복닥복닥하게  사는 안전지대를 넘어 광야를 두려워하지 않는 본연의 야성을 길러야 한다. 적자생존의 맹(猛)만이 저 거친 광야를 가로질러 살아 남을 수 있다. 야망의 야(野)와 들판의 야(野)가 같은 글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야망을 가져라. 야성을 잃지 말라. p130


3부 : 리더는 밥, 법, 북으로 움직인다

會 [모일 회] : 지식, 의식, 상식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라
모일 會는 시루 따위의 도구를 의미하는 증(曾, 일찍,거듭 증)에 뚜껑을 추가해 아래 두 부분이 합쳐진 것을 뜻한다. 뚜껑이 달린 큰 솥에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를 넣고 끓이며 조리하는 모양이다….. 온갖 식재료가 함께 끊으며 뭉글뭉글 동화되어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 하는 '맛의 용광로', 이것이 바로 會란 글자에 담긴 그림이다. 적개심도 녹이고, 증오도 녹이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가 이 안에 있다. P134

리더란 '밥', '법', '북'을 가지고 팔로워를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 중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균형이 깨진다. 밥이 관계의 측면이라면, 법은 규율과 보상의 측면이다. 북은 격려와 비전으로 동기 부여하는 것이다. 리더가 주구장창 북반 치면 구성원들은 '허풍'이라고 생각해 신뢰하지 않는다. 반대로 법만 강조하며 칼을 휘두르면 위축돼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힘을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밥만 강조하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전투구의 조직이 된다. 밥,법,북 3가지가 삼발이처럼 버텨줘야 구성원들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자부심을 느끼고 변화를 추구하며 일할 수 있다. P135

 疏通 [소통] : 마음을 비워야 길이 생긴다
소통이 소는 성글 소(疎, 트일 소)다. '곡식이나 긴 물건 따위를 짝이 되도록 성기게 묶는다'는  의미의 글자다.  이 맥락에서 '공기가 통하게 공간을 트다'는 의미로 발전했다…. 사람의 말도 마찬가지다. 구멍이 있어야 바람이 통한다. 상대의 의중이 들어갈 구멍이 있어야 한다. 

통할 통(通)은 책받침(辶, 辵 쉬엄쉬엄갈 착)과 길 용(甬)이 합쳐진 글자다. 용(甬)은 피리 관(䝺, 꿰뚫을 관)과 같아서 꿰뚫는 것을 나타낸다. 속이 빈 피리처럼 곧게 뻗은 길을 뜻한다. 비어 있는 것은 통하고 꿰뚫는다. 소통은 한마디로 상대의 의중과 나의 의도 사이에 길을 놓는 것이다.  장자는 "사람의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참된 마음이 나오지 않는다. 소리는 빈 곳에서 나오고 쓰임은 쓰이지 않음에서 나온다"고 했다. 疏通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서 나옴을 글자를 통해 알 수 있다. P138~139

소통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나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의도보다 내 생각을 점검하고 상대의 의준을 알아보려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나를 비우고 상대의 마음을 담으려 해야 한다. 이때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면 상대와 통하기가 한결 쉬어진다. p140 

君 [임금 군] : 지휘봉과 입을 함께 갖춘 자
임금을 뜻하는 글자에는 왕(王)도 있지만 왕이 신분적 상징, 권위를 뜻한다면 君은 리더의 역할을 함축하는 글자다.
다스릴 윤(尹)과 입 구(口)가 합쳐진 글자다. 尹자를 다시 분석해보면 오른손 우(又)와 삐칠 별(丿) 막대기가 합쳐져 있다.  여기서 막대기는 구성원을 통제하고 장악하는 '처벌의 막대기'가 아니다. 분명한 방향, 비전을 가리키는 지휘봉이다. 여기에 입, 즉 소통이 더해져야 한다. 아무리 방향이 좋더라고 구성원들과 연결되는 소통이 없으면 소용없다. 다스리려면 말을 해야 한다. 지시든 설득이든 대화든 해서 따로 노는 모래알을 함께 노는 찰흙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소통'의 필요성에서 입(口)이 들어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p142~143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소통을 못하는 것은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상대방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상대방도 중요시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자기중심적 태도 때문이다. 군(君)에서 막대기가 리더의 의도라면 입 구(口)는 구성원의 의중을 일고 조정하는 작용이다. 이것이 통해야 지렛대가 움직인다. p144

談 [말씀 담] : 소통에는 온기가 필요하다
말씀 언(言)과 불꽃 염(炎)이 합쳐진 글자로, 타오르는 불꽃 옆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나타낸 것이다. 불꽃 염(炎)은 타오르는 불길이지만 거세게 논쟁하거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도란도란 대화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p147

膳 [드릴 선] : 선물이 아닌 뇌물(腦物)을 하라  ( 腦 ->골뇌 )' 뇌를 감동시키는 腦物'
선물은 한자로 '膳物', 반찬 혹은 드릴 선(膳) 자를 쓴다. 고기 육(月)은 잘라 놓은 고깃덩어리를 가리킨다. 선(善)은 옳고 좋다는 의미이니 선(膳)은 제사 때 쓰는 신선하고 좋은 고기란 뜻이다. 그러니까 선물이란 평소 고기를 접할 수 없었던 시절에 제사 후 사이 좋게 나눠 먹는 좋은 '음식'이다. 하긴 예전엔 '뇌물'의 별칭을 사람 사는 데 얽히고설킨 '인정(人情)'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그러고 보면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그야말로 외줄타기다. p153

饗 [대접할 향] : 밥은 법보다 힘이 세다
대접할 향(饗)은 고향 향(鄕)에서 유래했다.  향(鄕)에서 좌측은 언덕 부(阜), 글자의 우측은 고을 읍(邑)의 '阝'이다. 이 두 글자 사이에 맛있는 밥(食)이 있다. 마을 두 사람[阝]이 마주 보고 밥을 먹는 모습이다. 고대 주나라 조정은 지혜로운 인사들을 초대해 식사를 나누며 존경의 뜻을 나타내고 고견을 구하곤 했다. 나중에 향(鄕)이 고향이란 뜻으로 쓰이자, 원래의 밥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음식 食자를 붙여 대접할 향(饗)자가 되었다. p157

시쳇말로 '잠 같이 잔 시앗은 내쳐도 밥해준 시앗은 내치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의 가장 큰 본능인 식욕과 성욕 중에서도 먹는 것이 더 강하고 오래간다는 것의 에두른 표현으로 보인다. 회의 중 누군가 '밥 먹고 합시다'를 외친다면 한번 주목해보라. 식사 후 판세가 어떻게 뒤집어질지 모를 일이다. 밥은 법도다 힘이 세다. p159

宰 [재상 재] : 입맛을 맞추는 것은 마음을 맞추는 것
재(宰)는 집 면(宀)과 매울 신(辛)이 합쳐진 글자다. 신(辛)은 죄인이나 노예의 얼굴에 먹물을 넣던 꼬챙이의  상형이다. 뾰족한 꼬챙이로 얼굴이나 몸에 묵형을 뜬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노예나 죄인이다. 즉 재상이라 할 때의 재(宰)는  집안에 있는 노예로서 식사를 담당하던 자다. 또 신(辛)을 날카로운 도구를 다루는 사람으로 해석해 요리사라 풀이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宰는 고대 귀족가문에서 주방 일을 담당하는 사람에서 나라의 재상으로 뜻이 확장된 것이다. p163

재상이 주방장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백성을 고르게 잘 먹이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니 음식을 잘 만들어 공평하게 분배해주면 훌륭한 재상이 된다. 반대로 신분과 역할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하지 못하면 불만이 생기니 정치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재상의 임무가 막중하다. p164

緣 [묶음 연] : 좋은 인연들 얻기 위해 필요한 것
연(緣)은 실 사(絲)와 끊을 단(斷)이 합쳐서 '옷의 가장자리를 싸서 돌린 가선'을 뜻하고, 여기서 삶의 둘레를 싼 가선이 인연이라는 의미를 띠게 됐다. p169

인연은 불교에서 온 개념인데 인과 연은 뜻이 각각 다르다. 인(因)은 내 능력으로 내가 잘되는 직접요인, 연(緣)은 주변에서 도와주어서 잘되는 간접요인이다. 농사에서 씨앗이 인에 해당한다면 비료나 노동력 등은 연이다. 인도 좋아야 하지만, 연을 잘 만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 이은 5% 미만이고 연이 95% 이상이라고 설법하곤 한다. 또한 因없이 緣만으로는 과(果)가 있을 수 없다. p169

이 말은 순서를 뒤집어도 성립한다. 인과 연이 있으면 반드시 과가 있고, 과가 있다는 것은 인과 연이 만났다는 뜻이다. 이는 감사하는 마음과도 연결된다. 오늘날 내가 잘되었다면 그것은 주변에서 함께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에게 많은 연(緣)을 베풀어야 한다.  p169

印 [도장 인]  : 아무리 멀어도 내게 돌아오게 하는 구심력
인(印)은 사람의 몸에 먹물을 새기는 묵형(墨刑)의 모습을 나타낸 글자다. 상형을 보면 '손톱 조(爪) + 병부 절(卩)'의 조함으로, 여기서 조(爪)는 손톱이 아니라 손을 본뜻 것이다. 절(卩)은 무릎을 꿇은 사람의 모습이다. 즉 꿇어앉은 사람을 향해 손으로 신표를 찍어 누르는 모양이다. (여기서 '누를 억抑'자가 유래했다.) p172

이처럼 노예나 죄인에게 표식으로 가한 묵형의 뜻이 일반화되어 도장으로 발전했다. 공문이건 편지이건 간에 모두 도장이 찍혀야 공신력이 발휘된다. 그런 점에서 도장은 손으로 눌러 찍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사람을 복종시키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p173

브랜드의 기본 특성은 표식과 구별이다. 튈수록, 다르게 표시할수록 사랑 받는다. 표(標)는 '나무 목(木) + 불똥튈 표(票)로 구성됐다. 표(票)는 갑골문에서 볼 때 오를 선(䙴)과 불 화(火)의 합체자로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는 뜻이다.
구별의 별(別)은 뼈(骨)의 윗부분과 칼 도(刀)가 합쳐진 글자다. 즉 칼로 살과 뼈를 분리하는 모습이다. 다른 것들과 분명히 분리돼 한눈에 띄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p173

사람들의 마음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는, 그리고 아무리 멀리 갔더라도 반드시 찾게 하는 자신의 브랜드를 갖기 위해서는 남보다 '나음'이 되든지 '다름'이 되던지 적어도 하나는 되어야 한다.  인(印)과 표(標), 별(別)이 던지는 메시지다. p173

4부 : 리더는 스스로 불씨를 지핀다

窮 [다할 궁] :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궁(窮)은 작은 동굴 혈(穴)에 몸 신(身)과 활 궁(弓)이 합쳐진 글자다.  궁(窮)은 동굴(穴) 끝까지 몸소(躬 몸 궁) 들어가 보는 것을 형상화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동굴에서 출구를 끝까지 가보아야 한다. 어설프게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 밝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p177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불가항력의 절벽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계절에도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듯 인생에도 열심히  씨를 뿌려야 할 때,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p187

主 [주인 주] : 자신의 운명에 불을 지피는 것
주(主)는 '등불'이다. 촛불이나 등불의 가운데 심지 부분에 불통 주(丶)가 붙은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등잔에서 등불이 타고 있는 모습의 상형으로 보는 것이다. 등잔불은 과거 동굴생활에서 한가운데를 지킨다는 데서 '주인', '등불'이라는 뜻으로 파생 되었다. p188

아이가 침울한 얼굴로 스님에게 말했다. "어제 어머니께서 점을 보셨는데 제 운명이 아주 엉망이래요."
스님은 잠깐 동안 침묵하더니 아이의 손을 당겨 잡았다. "얘야, 네 손금을 보여주렴. 이것이 감정선, 이것은 사업선, 이것은 생명선이다. 자 이제 주먹을 꼭 쥐어보렴."
아이는 주먹을 쥐고 스님을 바라보았다. "얘야, 네 감정선, 사업선, 생명선은 어디 있느냐?"
"바로 제 손안에 있지요."
"그렇지. 바로 네 운명은 네 손안에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입에 달린 거이 아니란다."

주인의식이든, 주연의식이든 거창한 것 같지만 핵심은 하나다. 문제의 원인을 내게서부터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당신이 마음에 불씨를 당겨라. 진짜 주인은 남이 임명하거나 위임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 운전에서 조수석에 앉아 멀미하지 말라. p191~192

破 [깰 파] : 깨치는 각성과 깨지는 용기
깰 파(破)는 말 그대로 돌(石)의 표피(皮)가 몸체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현재와 분리되는 각오를 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순간, 익숙한 세계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돌 한 부스러기로 그칠지, 하나의 새로운 개체가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p193

혹시 세상의 편견과 선입관, 자신의 어이없는 실에 지쳐 자포자기하거나 낙담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거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이미 깨진 과거의 시루는 잊어라 (破甑不顧,파증불고), 결연한 의지로 현재의 쥐꼬리만 한 기득권은 깨버리고 새로운 도전의 지를 다지라 (破釜沈舟, 파부침주). 그리고 파천황(破天荒)의 의지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지. 과거는 떨어내고, 현재는 떨치고, 미래를 향해 떨리게 도전하자. 돌조각을 쪼는 석수의 심정으로.. p196~197

旣 [이미 기] : 누구나 배가 부르면 고개를 돌린다
이미 기(旣)는 밥을 이미 다 먹은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왼쪽 절반은 고소할 급(皀)이고, 오른쪽 글자는 목멜 기(旡)이다. 앉아 있는 사람이 얼굴을 뒤로 향하고 입을 크게 벌린 모습을 본뜻 상형문자로 '이미 배불리 먹었다.' '다했다'는 뜻을 나타낸다. 목이 메인다는 것은 슬퍼서가 아니라, 고소한 냄새가 나는 밥을 배부르게 먹고 또 먹어 턱밑에 차오를 만큼 배부른 육체적 상태를 가르킨다. p199

기(旣)는 살아가면서 내가 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무릎을 끌며 다가가 세상을 다 갖다 바칠 듯 간절히 구하기도 하지만, 이제 내가 원했던 게 다 해결돼 배부르다고 안면 바꾸고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남에게 당하면 '인간이라 그러려니' 수용은 할망정 스스로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p201

運 [돌 운] 타고나는 것, 그러나 계속 움직여야 하는 것
지장, 덕장보다 한 수 높은 것은?  운장(運將)
세상에서 결코 이기지 못할 사람은? 운 좋은 사람.
성공하기 위해 운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사람들이 흔히 인용하는 퀴즈다.

운(運)은 군사 군(軍)과 쉬엄쉬엄 갈 착(辶)이 합해진 글자다. 즉 군수물자의 이동을 형상화한 글자로 '움직이다', '돌다', '옮기다'란 뜻으로 쓰인다. p203

*운칠기삼(運七氣三) : 청나라 포송령(蒲松齡)이란 유명한 작가의 작품집인 <요재지이(聊齋志異)>에 등장.
한 선비가 자기보다 못한 자들이 번번히 급제한 것이 억울하여 이에 염라대왕에게 가서 따져보기로 했다.
이에 염라대왕이 따져 보기로 했다. 염라대왕이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러 술시합을 시켜놓고 선비에게 말했다. 
"정의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네가 분개한 것이 옳고, 운명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내가 체념하는 것이 옳다."
이 시합에서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을 마시고 정의의 신은 석 잔밖에 마시지 못했다. 염라대왕은 말했다.
"세상은 정의대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운명의 장난이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세상을 7푼의 불합리가 지배하고 있긴 하나 3푼의 이치가 행해지고 있음도 또한 명심해야 한다." p204

인생이 무조건 누구에게나 평평한 운동장이라고 생각하며 경기에 임하는 것은 무모하고 순진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지레 경기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다. 운수 탓을 하게 되는 이유는 만을 것이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엉망이라서 일수도 있고, 경쟁자가 잘 나가는데 대한 시샘일 수도 있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스스로 납득할 길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우연이나 뜻밖의 운으로 여겨지는 것도 들여다보면 언젠가 뿌린 씨앗의 열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남의 행운'도 사실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필연이다. 모든 일이 행운, 불운에 따라서만 결판나는 게 아니므로 운수에 기대지만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라는 교훈이 '운칠기삼'에 담겨 있다. p205  

吉凶禍福 [길흉화복] : 예측하지 말고 창조하라
피터 드러커는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노력에 의해) 창조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복은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능동적으로 짓는 것이란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새해 덕담을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 '복 많이 지으세요'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p213

幸 [다행 행] : 남에게는 우연, 나에게는 필연
다행 행(幸)과 매울 신(辛)은 글자 모양으로 하면 한 일(一) 하나의 차이밖에 없다. 幸은 말 그대로 행운을 뜻한다. 辛은 고난을 뜻한다. 호사가들은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고진감래(苦盡甘來)라며, 고난(辛)을 행운(幸)으로 전환시키는 한 방(一)이라며, 여기에서 감사나 긍정적 태도 같은 자기계발용 덕목을 덧붙이기도 한다. p214

행운은 우연이지만 행운이라는 결과를 낳기 쉬운 환경은 노력해야 만들어진다고 했다. 행운의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미리 계획하고 터전을 일궈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좋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야 하고, 성공하고 싶으면 불확실 하더라도 일을 벌여야 한다. 빈도를 높여야 확률도 높아진다. 많이 움직여 사람을 만나고 바깥세상을 흡수하는 자세, 기꺼이 변화를 허용하고 강렬하게 밀어붙이는 자세가 행운을 부른다. p217

肯 [긍정할 긍] : 뼈를 보는 사람, 고기를 보는 사람
긍정의 긍(肯)은 '옳게 여기다'라는 뜻이다. 간혹 글자를 보면 그림이 그려지는 한자가 있는데, 肯도 그렇다. 肯의 자원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해석 하나는 '나아가다(止)'와 고기 육(肉)이 결합해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 나아가다'라는 의미에서 '긍정'의 의미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뼈 골(骨)의 생략된 형태 + 고기 육(肉)으로 보아 '뼈 사이의 살'을 가리키는 말로 쓴 것이다. 고기와 살을 뜯어먹는 즐거운, 여기에서 긍정의 뜻이 파생됐다는 풀이가 비교적 정통성이 있다. p219

"허약함과 배우지 못함은 내 성공의 원천이었고, 가난함은 근면의 원동력이었다. 허약함은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고, 배우지 못함은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고,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누구에게나 배우려 했다. 일본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행운을 가만히 들어보면 사실 그 자체보다 해석력에 더 큰 작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긍정은 현실을 밝게 해석하되 변화에 대응해 자신을 적응시켜 나갈 태도를 함께 고려한다. 반면에 낙관은 대책 없는 장밋빛 전망인 경우가 많다. 잘못된 낙관은 허황된 회피로 현실을 왜곡한다. 그 결과 섣불리 긴장을 늦추게 해 실수나 실패를 자초할 수 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좋은 증빙이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가장 먼저 죽어나간 사람은 비관주의자, 그 다음이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였다. 끝까지 생존한 층은 현실직시와 자기규율, 비전의 3박자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스톡데일 제독 같은 사람들이었다. p222

긍(肯), 글자의 모습에서 갈비를 뜯는 행복한 식사 풍경을 떠올리든 당신 마음이다. 중요한 것은 역풍이 몰아치더라도, 당장은 배고프더라도 그런 '상태'를 연상하며 전향적으로 자신의 관점을 배치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肯의 자세다.p223

勞 [일할 노] : 노도의 괴로움을 보람으로 바꾸는 법
노력(努力)은 생사를 위해 힘쓰는 육체활동이다. 반면에 노력(勞力)은 목적을 위해 열정을 다한다는 의마다. 
한자의 자원에서도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다. 힘쓸 노(努)는 종 노(奴)와 힘 력(力) 자로 구성돼 있다. 종 노(奴)는 여자(女)에게 일을 시키는(又) 모습이다. 즉, 노비(奴) 처럼 힘껏(力) 일하는 것이 바로 노력(努力)이니 괴로울 수 밖에 없다. 그저 시늉으로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애만 쓰면 되는 노력이다. 반면에 일할 노(勞)는 자의 유래는 어떤가, 등불 형(熒)과 힘 력(力)이 합쳐진 글자다. 환하게 등불을 밝히고 밤새 노력하는 것이다. 그저 고되게 애만 쓰면 되는 노력(努力)과는 다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구에 의해 불이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불씨를 지펴내는 적극적인 추진력을 동반한다. 영어 단어로 이야기하면 노(努)는 노동(labour)에, 노(勞)는 열정(passion desire)에 가깝다. p225

운은 바뀐다. 그러나 운이 공짜로,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략과 창의성을 가지고 노력(勞力)을 기울여야 한다.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 노(努)마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전시킬 수 없다. 반딧불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한 창의성과 전력, 열정의 노(勞)가 필수다. 금수저가 아니라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흙수저를 뜨거운 가마에 굽는 '勞力'을 통해 도자기 수저로 만들지 않는 것은 본인의 노력 부족이요, 책임이다. p227

苦 [쓸 고] : 쓴맛에서 단맛으로, 다시 그윽한 맛으로
쓸 고(苦)는 쓴맛 나는 풀의 의미인 초(艸)와 발음을 가진 고(古)가 합쳐진 글자다. 풀은 대부분 쓴맛이 난다. 풀은 왜 대부분 쓴맛이 날까. 땅속에서 인내하고, 땅을 뚫고 용을 쓰느라 응축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p229

<사이언스 타임즈>에 실린 한 논문에 의하면 영장류와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쓴맛이라고 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쓴맛을 느끼는 이유는 생존에 위협이 되는 먹을거리를 피하려는 보호본능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이 쓴맛을 뱉지 않고 감내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말하자면 쓴맛은 인간을 인간답게, 그리고 인간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p230

인생에는 고난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 젊어서 구슬땀을 흘리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 식은땀을 흘린다. 초년의 고난에 머무르지 않고 마침내 싹을 틔워 생존해가는 게 바로 인생이다. p231

5부 : 리더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는다.

父 [아버지 부] : 아버지가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
부권(父權)이 날로 땅으로 떨어진다. 유치한 이야기이지만 아버지의 권위는 집에서 먹는 것을 어떻게 대우 받느냐에서도 측정할 수 있다. 예전에 맛있고 귀한 음식은 늘 가장인 아버지의 차지였고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만 드시는 생선, 계란… 침을 꼴깍거리며 간절한 눈치를 보이면 아버지는 선심 쓰듯 이것들을 넘겨주시곤 했다. 어쩌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만 드리는 별식을 아이들에게도 하사하는 날은 그야말로 '운수대통'한 날이다. p235

아버지 부(父)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이 같은 부권의 몰락은 이미 예고된 비극(?)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부(父)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도끼 부(斧)에서 비롯됐다는 보는 것이다. 돌도끼 또는 몽둥이를 쥐고 있는 손의 모습이다. 아버지(父)는 돌도끼를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하고 적의 침입을 막았다. 가마솥 부(釜)에 아버지 부(父)가 들어가는 것은 아버지가 큰 솥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어서다. 하지만 오늘날은 도끼가 필요 없는 시대 아닌가. p236

아버지(父)의 영(令,하여금,우두머리)이 서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도끼'의 용도가 쇠해온 운명과 통하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를 상징하는 21세기의 새로운 한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짧은 생각이지만, 새로운 '아버지' 안에는 '대화'라는 뜻이 들어가면 어떨까 한다. p238

조직에서 퇴출당하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지만, 가족에게 퇴출당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가족 간의 대화는 한 번 목돈을 예치해 놓으면 끝나는 예금이 아니다. 매일매일 장기간 납입 해야 하는 연금이다. pP240

母 [어미 모] : 젖먹이는 이의 숭고함
여자 여(女)가 어머니 모(母)가 되는 것은 단순한 단계별 발전이 아니라 급격한 질적 승화다. 어머니 모(母)는 여자 여(女)자의 가슴 부분에 젖꼭지를 의미하는 두 점을 찍어 만든 상형문자다. 이는 일반적 여성의 집합에서 어머니의 '구별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정한다. 즉 어머니의 임무는 아이에게 젖먹이는 일임을 확실하게 보인 것이다. p242

바다(海)는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이는 존재로, 언제나 자식들의 투정을 다 받아주고 감싸 안은 어머니의 품과 같다. 바로 여성성의 최고봉으로서 어머니는 이처럼 바다와 같고, 품이 따뜻해 늘 '마음의 고향' 같은 존재임을 뜻했다. p242

매양 매(每)는 어머니 모(母) 위에 머리 장식인 비녀를 한 개 꽂은 모습이다. 매일 한결같이 단정하게 변하지 않는 신사임당 같은 여인상이 담긴 글자다. 한결같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늘', '매양'이라는 뜻이 나온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글자의 진화다. 어머니가 비녀를 하나 꽂아 정리하는 것이 매양 매(每)가 돼 단정한 모습으로 한결 같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비녀의 개수가 많아 질수록 그 의도가 의심되었다. 두 개를 꽂으면 음란할  애(毐), 3개를 꽂으면 독 독(毒)으로 점점 문제적 여자로 변화한다.  p243

나는 어머니 모(母)와 독 독(毒) 자를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독(毒)이란 글자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팜므파탈보다는 자식을 망치는 엄마들의 독극성 사랑이 연상돼서다. p243

편중되거나 그릇되거나 지나친 사랑은 자녀를 망친다. 폭군 네로, 연산군 등 문제적 임금 뒤에는 문제적 엄마가 있었고, 쿠빌라이 황제, 알렉산더 대왕의 뒤에는 역시 현명한 엄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자 모(母), 매(每), 독(毒)이 주는 교훈이다. p246

妻 [아내 처] : 머리를 올린 사람
결혼 혼(婚)은 '여자 여(女) + 저녁 혼(混)'이다. 남자가 아내를 얻을 때 관행적으로 황혼 때 식을 올리기 때문에 저녁 혼(混)자가 붙었다. 남자 중심의 시각에서 여자를 데려오는 것일 뿐 여자 쪽에서 딸을 시집 보내는 뜻으로 쓰이지 않았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 처(妻)가 된다. 처(妻)는 머리채(屮)를 잡아 위로 올린 여자(女)로, 비녀 꽂은 여자를 뜻한다. 여기서 '아내', 시집 보내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골프장에 처음 나가는 것을 흔히 '머리 올린다'고 표현하는데, 이와 관련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혼례를 치러 본격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의미다. 머리채를 잡는 것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집갈 나이가 된 여자가 성인식 하는 모습을 본뜬 것이다. 시집가기 전에는 머리를 땋아서 내리고 다닌 반면 시집간 여자는 머리를 땋아서 위로 감아 올렸다. 이외에 앞의 혼(婚)자와 마찬가지로 머리채를 휘어잡아 탈취해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요즘의 기세등등한(?) 아내의 위상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유래다. p248

처(妻)가 쓰인 대표적인 말이 조강지처(糟糠之妻)다. 조(糟)는 지게미, 강(糠)은 쌀겨라는 뜻으로, 조강지처는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한 본처를 이르는 말이다. 혹자는 요즘 이혼률이 높은 이유가 젊어서 쌀겨와 지게미를 머는 고난의 시절을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한다. p249

혼인을 하면 한 남자의 부인이 되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역할이 주어진다. 바로 며느리 역할이다. 며느리 부(婦,아내 부)를 보자. 부(婦)는 '여자 여(女) + 비 추(帚)의 조합이다. 한마디로 빗자루를 든 여자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시집온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결국 비질하는 것 정도였던 셈이다. p250

무릎을 꿇고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다소곳하기 그지없던 여자(女)가 저녁에 혼인해서(婚) 머리에 비녀를 꽂고 아내(妻)가 된다. 시집와서 열심히 비질하고(婦) 청소해 집안과 가사를 돌본다. 그렇게 해서 집은 편안히(安)하고 이럭저럭 세월이 흐르면 드디어 시어머니가 된다. 여자의 일생에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이다. 시어머니 고(姑)는 여자 여(女)에 오랠 고(古)가 붙은 글자다. 즉 오래된 여자다. 이제는 그 집안의 귀신으로 오래된 여자가 되어 새 여자를 맞이하는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과거 사회에 수많은 이들에게 되풀이되어왔던 '여자의 일생'이다. p251

誨 [깨우칠 회] : 솔루션보다 에너지를 주라
가르친다는 뜻을 가진 한자는 많다. 먼저 기를 육(育)은 갓 태어난 아기를 거꾸로 새운 모습이다. 민(敏)은 민첩하다. 애쓰다, 영리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매(每)와 복(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칠 복(攵)은 오른손에 회초리나 매를 든 모습을 형상화해 '어미니의 회초리'라는 뜻으로, 어머니가 자식을 매로 훈육하여 영리하고 총명하게 한다는 뜻이다. 가르칠 교(敎)는 아이(子)에게 새끼매듭 지우는 법(爻)을 회초리로 치며 가르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효(爻) 즉 새끼매듭은 문자가 출현하기 전 기억을 보조하는 주요수단으로, 당대 아이들의 기본교육 과정이라는 설과 점치는 도구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일단 교재라 이해하면 될 듯 싶다. 아이에게 공부거리를 주고 매를 들어 다그치는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칠 복(攵)이란 글자를 통해 고대의 자녀교육에 체벌이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p253

반면 깨우칠 회(誨)는 어머니가 회는 어머니가 매일 회초리 대신 말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는 채찍으로 때려 가르치기보다 새벽녘 동처럼 스스로 깨쳐 밝히는 효(曉,새벽 효)에 가깝다. 교(敎)는 지식 등 무엇을 집어넣어 가르친다는 의미가 강하고, 회(誨)는 가르치되 배우는 사람에게서 끌어내 스스로 깨닫게 하는 데 더 중점을 준다. p254

나는 '가르치다'라는 우리말이 참 심오하다고 생각한다. 교(敎)와 회(誨)의 요소를 모두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르치다'의 어원은 '갈다+치다'의 합성어로 보는 설과 '가장자리를 치다'는 의미로 보는 설이 있다. 전자는 연마(鍊磨)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가르치려면 주체인 교사가 먼저 갈고 닦는 연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너나 잘해'라는 빈정거림을 듣지 않고 진정한 가르침이 설 수 있다. '가장자리를 치다'는 설 역시 시사점이 있다. 진정한 가르침은 선생이 혼자 줄줄 읊어주는 것이 아니라 변죽을 울려 학생으로 하여금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일리 있지 않은가. 일찍이 공자도 제자들을 가르칠 때 "밑줄 좍, 별 3개~"하며 시시콜콜 알려주지 않았다. 한 귀퉁이를 들어 나머지 세 귀퉁이를 알 때까지 기다렸고, 입에서 뱅글뱅글 돌고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생각하며 분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 가르침과 인내가 제자들의 진보와 발전을 가능케 했다. p255

교육이란 그런 것이다. 죽비의 매질과,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간질간질해도 꾹 참고 스스로 깨우치길 기다리는 인내의 조합이다. 그래서 남의 자식을 가르칠망정, 자신의 자녀는 가르치기 힘든지 모른다. p255

예전에 모 참고서 광과 카피에 '어머니는 가장 좋은 선생님입니다'가 있었다. 과연 그럴까. 그런가 하면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란 카피가 화제 되기도 했다. 대부분 취학기 이전에는 좋은 부모였다가도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면 다급해져서 나쁜 학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다. 멀리 보기보다 빨리 보라고 하고, 함께 가기보다는 앞서 가라고 하는 욕심이 생긴다. 나는 관심의 양육으로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감시의 사육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가. 아이를 키우는 육아(育兒)가 사실은 나 자신을 키우는(育我) 인고의 과정이더란 것, 자녀를 키우면서 수없이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p256 

孟仲叔季 [맹중숙계] :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
맹중수계(孟仲叔季)는 형제간 출생 순서를 반영한 한자다. 즉 맹(孟)이 맏이, 중(仲)이 둘째, 숙(叔)이 셋째, 계(係)가 넷째의 순이다. p259

'맏이'란 축하받을 수도, 저주받을 수도 있는 자리였다. 오죽하면 축하할 축(柷)이나 저주할 주(呪) 모두 맏 형(兄)이 들어가겠는가. 축(祝)은 '보일 시(示) + 맏 형(兄)'으로 구성돼 있다. 시(示)는 제사, 의식을 뜻한다. 즉 형제 중 연장자가 제사의 주관자로서 말하는 것을 뜻한다. 저주할 주(呪)는 '입 구(口) + 맏 형(兄)'이다. 다툴 경(競)은 또 어떤가. 형이 두개나 나란히 들어 있지 않은가. 서로 누가 (兄)인지 권력과 금전을 놓고 경쟁하면 결국 집안에 분란이 나게 마련이다. 왕가의 형제들은 축하하며 양보하거나(祝), 미워하며 싸우거나(呪)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p264

兄弟 [형제] : 하늘이 내려준 벗이자 삶의 언덕
맏 형(兄)과 아주 제(弟)의 한자에는 끈끈하고도 뜨거운 형제애가 담겨있다. 재산, 권력 등 경쟁 레이스를 배제하면 형제야말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천생의 영원한 벗'이자 같은 기운을 타고난 세상에 둘도 없는 '동기'다 오죽하면 서양 속담에 '형제는 하늘이 내려준 벗'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p268

형(兄)은 '입 구(口) + 사람 인(儿)'이 합쳐진 글자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습이다. 또는 입(口)을 벌리고 꿇어 앉은 사람으로, 제단에서 축원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제사를 드려 축원하는 것은 장자의 몫이었기에 '형'이라는 뜻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는 동생들을 입으로 가르치고 타이른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p268

아우 제(弟)는 말뚝 익(弋)과 활 궁(弓)이 합쳐진 글자로 , 나무말뚝에 차례대로 밧줄(弓)을 감아놓은 모습에서 형의 다음인 아아의 의미로 풀이한다. 또는 활 궁(弓)을 '활을 들고 노는 아우'를 본뜬 글자로 보기도 한다. 이외에 아우가 엎드린 등의 모양이 활 모양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보는 해석도 있다. P269

볏가리를 양보한 의좋은 형제라든지, 황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우애에 금이 생갈까 봐 주운 황금을 물가에 버렸다는 '형제투금(兄弟投金)'의 미담이 점점 주위에서  사라진다. 머리가 크든 입으로 한 몫하든, 집안 대소사의 실타래를 질서 있게 풀어내는 형이 때론 그립다. 형제란 같은 기운을 타고난 같은 나무의 가지가 아니던가 p271

友 [벗 우] : 나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 
벗 우(友)는 왼 손(左)과 오른 손 우(又)가 교차된 모습이다.  손에 손을 맞잡고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듣고 나면 우(友)에서 두 사람이 악수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정지된 글자가 아니라 두 손을 마구 흔드는 애니메이션 장면마저 연상된다. p273

우리가 흔히 벗을 일러 막역(莫逆)한 사이라 말한다.  이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 상대방의 뜻을 거스를 일이 없는 사이란 뜻이다. 관중과 포숙아처럼 서로 손을 맞잡고(友) 양 날개를 펼친 듯(朋, 벗 붕) 함께 이 거친 세상을 헤쳐갈 나의 한쪽 날개, 한쪽 손, 그런 친구를 당신은 가졌는가? 아니, 당신은 그런 친구인가? p276

老 [늙을 로] : 시간의 모래알이 떨어질수록 인생은 더 선명해진다. 
프랑스 사상가 폴 사르트르는 "인생이라는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아래로 떨어질수록 인생은 더 선명하게 보인다." 나이 듦을 찬양했다. 동양에서도 늙음은 낡음의 동의어가 아니었다. 노마지지(老馬之知)란 말도 있지 않은가. <한비자> 설림상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p284

늙을 로(老)는 '사람 인(人) + 터럭 모(毛) + 지팡이 비(匕)'의 합성이다. 즉 하얀 머리를 길게 기른 노인(耂)이 지팡이(匕)를 짚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모양을 본떳다. 생각할 고(考) 역시 갑골문의 유래로 보면 늙을  로(老)와 같은 글자로, 노인(老)이 지팡이(丁)를 짚고 있는 모습을 의미한다. 노인은 세상 풍파를 모두 겪은 사람으로 어지간한 세상일은 달통하여 그에게 물어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뜻을 담고 있다. p285

영화<인턴>은 직장생활 40년 경력의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로버는 드 니로가 신생 온라인쇼핑몰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재취업해 벌어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가 조직을 피곤하게 하는 '꼰대'가 아닌 '어르신'으로 환영받은 비결은 한마디로 '기다림'이다. 그는 대우받으려 하거나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려 하지 않는다. 지적하지 않고 묵묵히 지원해주고 챙겨준다. 필요하면 조언해주는 지혜를 갖추되 먼저 오지랖 넓게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젊은이들이 저절로 그에게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가 말한 "손수건은 상대방에게 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라는 대사는 시사적이다. 사람들에게 빌려주기 위한 손수건(지혜)는 늘 갖춰놓고 있으되, 울기 전에 미리 닦아주는 성급함은 범하지 않는 것, 그것이 꼰대가 되지 않는 어르신의 경륜이다. p288

세월이 가져온 풍화(風化)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자, 내칠 수 없다면 적응하라. 꼰대가 될지 어르신이 될지는 하기 나름이다. 폼 나는 어르신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의 품을 넓혀라, 앞에서도 등 뒤에서도 '어르신'이란 존칭을 듣는 것이 명실상부한 노인이라 할 수 있다. p289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김성회, 북스톤,2016.01.02) : Apr 20, 2016

Zack's Comment

This book is about Chinese related to history of Chinese characters. 
As we already know that Chinese culture and history had been spread out all of Asian countries for a long time.
But, Chinese character is very difficult to learn both reading and writing.
That's why it is not easy to be interested in what Chinese characters mean.
 
After reading this book, I think that I can find out the profundity of life from Chinese characters.
So, I take note of how it can be made old Chinese characters with historical background. 
Then, I will keep in mind a good things from it.    

Every languages have its own way to express their culture and history. 
Interestingly, I try to leave a comment in English for reviewing of this book.
I believe that it can be helpful to have various perspective from learning other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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