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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22, 2020

[Zack's BookCafe] 삶의 한가운데 영원의 길을 찾아서

대개의 종교들은 휴머니즘에 뿌리를 둔 진리로서의 교훈을 교단을 위한 교리로 바꾸곤 했다. 기독교에 있어서도 성경의 직접적인 삶의 가치관을 신학의 그릇 속에 담아 폐쇄적인 '우리의 것'으로 굳혀 놓았다. 성경의 진리는 '인류 모두의 것'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의 것'과 일치되지 않는 것은 배격하는 흑백 논리를 강조했고 정신적 집단 이기주의를 굳혔던 것이다. p27

​개인은 개인대로 성장해야 하고 사회는 사회대로 자라야 한다. 내가 자라지 않는데 가정이 어떻게 행복해지며, 내가 성장하지 않으면서 민족이나 국가의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면에서는 성장이 곧 애국심이며, 성장을 포기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자기 성장과 자아 완성은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어야 한다. p39

나와 내 소유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이런 차원에서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찾지 못하며 자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소유물은 결국 나를 떠나기 마련이며 인생은 허무해질 뿐이다. 그러나 정신 및 인격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더 높은 목적을 사모하면서 그 목표에의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일의 사회적 의미를 찾는 사람은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생의 목적임을 깨닫게 된다. p49

인간은 결국 자기 인격의 성장만큼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인격이 50이면 그 사람은 모든 면에서 50의 생활 이하에 머문다. 인격 이상의 삶을 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릇의 크기만큼 물건을 담을 수 있다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성실하게 자기의 인격을 완성시켜 나가는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격의 핵심은 무엇인가 자산에 대한 성실성이며 사리 판단에서 경건함을 갖는 일이다. p88

자유는 인간다움의 핵심이며 인격의 생명이다. 그 자유가 희망을 잃으면 우리는 삶을 영위해 갈 수 없다. 어떤 한계와 절망의 상태에서도 희망을 얻을 수 있다면 그 희망을 주는 종교적 신앙에 귀의해도 좋은 것이다. 신앙은 언제 누구에게나 희망과 편안함을 준다는 것이 그 뜻이다. p101

신앙은 예배와 교회 행사라는 사고와 신앙은 생활이라는 생각 중 어느 편이 더 현실적이며 소망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가. p110

교회주의란 다른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을 교회에만 국한하는 일이다. 신앙생활은 가정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직장에서도 전개되어야 한다. 크리스천들이 사는 공동체 속에는 언제나 신앙이 꽃 피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p165

아홉 사람이 고민하는 문제는 내버려 두고 교회에 오는 한 사람을 붙들고 신앙운동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폐쇄적이다. 말씀과 진리는 하늘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지 교회를 키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p167

그런데 다른 건 모르지만 독서만큼은 멈추는 않았으면 좋겠다. 현대인들은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만 가지고 한다. 정보는 필요하면 보고 잊어버리기 때문에 사람을 즉, 정신을 키워 주지 못한다. 반면, 독서는 인생의 진리를 키워 준다. 그러니 독서를 통해 신앙을 진리를 성장시켜 갔으면 좋겠다. p171

기독교가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사랑이 만물에 미치는 자비와는 약간 그 성격이 다르며 인간 간의 인격적 사랑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먼저 절대자인 신과의 사랑을 지녀야 하며 그 사랑이 인간과 세계에 뻗치는 것이 순서이다. 이는 마치 태양이 만물을 비추는 것과 같다. p233

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은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신념이 없는 생활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 신념을 생활관 또는 인생관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하고 일생을 보낸다는 것은 극히 위험하며 일생의 실패와 공허를 가져오기 쉽다고 믿는다. p235

그리고 지금은 우리 모두가 우리들에게 주어진 십자기를 지도록 되어 있다. 주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를 주신다. 그리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십자가인 것이다. 진실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영원한 것을 위해서, 이웃의 행복과 생명을 위해서, 마침내는 이루어져야 할 하늘나라를 위해서. p260

삶의 한가운데 영원의 길을 찾아서★★★★★(김형석, 열람원, 2020.1.17) Feb 22,2020​

Zack's Comment

어쩌다 보니 나이를 먹었고  우선적인 '소유'를 통해 삶의 안정을 찾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버린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계획되지 않은  삶의 한 가운데 내버려진 한 영혼은 그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자극적인 무엇을 찾아 헤매고 또다시 좌절과 외로움을 맞보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종교와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팍팍한 삶 속에서 현실을 부정하고 막연한 '자유'를 갈구하는 자아를 발견하고 한다. 계획되지 않은 삶 속에서 당황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 막연한 '소유'를 통한 안정만을 갈구하는 것은 향후 또 다른 인생의 허무함과 외로움을 재생산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는 여지를 엿보게 되었다.

우선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적 '소유'를 통한 안정을 추구함과 동시에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종교적 가르침을 얻어 가고자 한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태양의 빛과 같이 절대자인 신과 사랑의 시작이 될 것이다.

<좌절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재미나게도 신앙에서는 실패한 인생이 없다. 신을 믿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하든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신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에서는, 가령 약간의 좌절은 있더라도 그런 좌절에서조차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찾아낸 의미가 인생의 빛이 된다. 이 빛은 세상에 널린 흔한 빛이 아니다. 세상이라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나만의 기쁨이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역전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정치가, 심리학자, 극작가도 해내지 못한 역전극이며, 해방이다. p37 약간의 거리를 두다(소노 아야코)

Sunday, February 2, 2020

[Zack's BookCafe]백만번의 변명

결혼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부부는 가족과 조금 달랐다. 부부는 역시 부부라는 단위로밖에 잴 수 없다. 매듭으로 말하면 이중매듭이 아니라 나비매듭 같고, 식물로 말하면 뿌리가 아니라 줄기 같다. 이처럼 서로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언제나 불안정한 부분이 도사리고 있었다. p71

이제 와서야 깨달았다고 한다면 너무 늦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애정이 아니라 공통의 목적을 가지거나 공통의 적을 만드는 일이었다. 여하튼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 부부로서 지속적으로 편안한 형태가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마주 보고 있으면 반드시 결점만 눈에 띄게 되어 언젠가는 지긋지긋해진다. p128

지금은 예전만큼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다. 단지 서로에게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에  능숙해졌기 때문이다. 그건 상대방을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기보다는 상대방을 화나게 해서 자신까지 불쾌해지고 싶지 않은 일종의 생활의 지혜와 같은 것이었다. p318

여자는 현명하다. 언제나 여자는 결코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 헤어지지 않는다. p340

많은 부부가 그렇듯 생활은 두 남녀를 천천히 거세해 간다. 그 편이 사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몸이 쉴 곳과 몸이 흥분할 곳이 같다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생활이란 것은 만만치 않다. 전기계량기의 숫자나, 배수관이 막힌 화장실, 싱크대에 방치해 놓은 더러운 그릇 같은 것들과 매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녀석들은 정말로 융통성이라는 것을 모른다. p342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할 수 있다. 세탁이나 청소, 바느질 같은 걸 고생스럽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애당초 이런 게 남자의 위신이나 체면이 상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이 아닌 다른 떠넘기는 것이야말로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일일 것이다. 만일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면 자기가 직접 만들거나, 아니면 둘이서 맛있는 집을 찾아 먹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누구와 함께 먹으며, 그 시간 동안 무슨 말을 나누는가이다. p356

때로는 사람은 함께 살며 생활을 공유함으로써 애정이 깊어진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걸까? 공동생활만큼 두 사람의 가장 연약하고 소중한 부분을 사정없이 짓밟아 버리는 존재가 또 있던가. 그렇지 않다면 매년 숫자가 걷잡을 수없이 늘어만 가는 저 이혼율은 뭐란 말인가? p356

"응, 그래. 고마, 워"

그런 사쿠를 보고서 시키코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진짜 호의란 분명히 이런 것이다. 상대방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깨끗하게 물러나고, 그러면서도 갑자기 모습을 감춰버려서 뒷말을 나쁘게 만들지도 않는 것이다. 사쿠 같은 남자와 만난 것은 몇 안 되는 행운 중 하나가 틀림없다. p372

아마 많은 부부가 그렇듯 둘이서 살아가는 동안에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린 것이다. 소중한 '무엇'이 대체 무엇이었는지조차도 이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 소중한 '무엇'이 이별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건지, 아니면 그게 아닌 다른 이유로 이별하는 건지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p408

​부부란 무엇일까?
그 대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시로와 다시 한번 부부를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대답을 찾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는 동안을 사람들을 부부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p445

백만번의 변명★★★★★(유이카와 케이,남주연,(주)영림카디널,2004.11.20) Jan 31,2020

​Zack's Comment

​'백만번의 변명'을 하고 싶을 만큼 자신을 합리화하고 싶은 선택이 있을까?
그 '선택'이 쉽사리 되돌릴 수 없고, 죄책감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고 싶은 유혹을 넘어 확신에 찬 자기 합리화가 필요할 것이다.

'결혼'은 [   ]이다.'라는 정의에 가까운 작가의 섬세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결혼'은 무엇이며 '부부'란 무엇인가라는 대답을 찾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는 동안을 사람들은 부부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 속 결혼 생활은 내 집 장만, 육아 혹은 싱크대에 방치에 놓은 더러운 그릇 같은 융통성 없는 생활이라는 만만치 않은 일상 속에서 좁혀지지 않는 둘 사이의 무언의 갈등을 이끌어 내고, 그 사이 진정한 가족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삶 속의 공통의 가치인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점점 싸움의 횟수를 줄여가는 것이다. 그건 상대방을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기보다는 상대방을 화나게 해서 자신까지 불쾌해지고 싶지 않은 일종의 생활의 지혜라면 그 지혜를 깨닫기까지 왜 이리 긴 시간이 걸렸을까 하는 자책에 가까운 동의를 이끌어 낸다.

대충사는 인생이란 없다.
혼자 사는 인생 또한 없다.
더불어 같이 사는 인생 속 평생을 같이할 꼭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 누군가에게
언젠가 그 선택을 책임감만으로만 짊어지기에는 너무 힘들어지는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결혼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공통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평온하고 안정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뿌리내리기란 만만치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을 향한 비난이 아닌 부족한 자신에 대한 인정을 통해 지혜를 찾아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끝으로 2014년 어느 날  적어 두었던 어느 철학자의 결혼에 대한 메시지를 되새겨 본다.

​"결혼(소유)과 사랑(무소유)에 대하여...
'결혼은 상대방의 성기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
(너의 성기는 내가 쓰고, 내 성기는 네가 쓰는, 다른 사람이 쓰면 간통이자 범법행위)

결혼은 사랑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족쇄가 된다.
따라서 대단히 큰 사랑이 아니면 결혼에 따르는 소유욕과 역할분담을 견뎌내기가 만만치 않다."

Zack's comment
결혼 생활이란 결혼(소유)과 사랑(무소유)의 대립을 결혼이라는 냉혹한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타협해 가는 과정인 듯하다. 그 누군가 고통 속에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아마도 결혼에 대한 과대망상증 환자이거나 자라온 환경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지배 당해버린 결혼에 대한 자기 확신이 상대에 대한 배려를 포기한 채 결혼이라는 세속적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새로운 사랑에 굶주린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육아라는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 책임감을 가지기도 하고 성숙해지기도 우유부단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결혼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한 미결 사건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 미스터리의 결말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는 알 수 없다.

젊은이들이여...
사랑과 섹스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 현혹되어 결혼을 너무 싶게 생각하지 말기를...
인류의 선구자들인 아담과 이브의 교훈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유혹은 언제나 그에 따르는 큰 고난이 함께 하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