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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29, 2017

[Zack's BookCafe] 자본에 대한 불편한 진실

가령 A와 B가 피 터지게 싸운다고 했을 때 우린 A든 B든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혹시 이 둘의 싸움을 부추겼던 C가 있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C는 누가 이기든 간에 자기 몫을 챙기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C는 도대체 무엇을 챙기는지, 그리고 최종 승자는 앞으로 C와 어떤 간계를 맺게 되는지.... p25

무엇보다 손절매에 대한 결단력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애당초 -10~20%의 손실을 봐도 툴툴 털고 '허허' 웃으면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여유자금으로 덤벼야 한다. 자본이 빠져나올 때   같이 빠져나올 수 있는 것도 진짜 중요한 성공 투자 능력이다. p73

분명 자본은 우리에게 빚의 '올가미'를 씌우려 할 것이다. 돈 더 빌려 가라고, 빨리 대출을 갚지 말고 나하고 조금만 더 달콤한 사랑을 하자고 유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는 이를 악물고 뒤도 안 돌아보고 자신의 빚을 갚아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더 정신 차리고 있으면 자본이 파 놓은 함정을 피해 갈 수 있고, 그래서 생존한다면 승리는 결국 우리의 것이다. p123

부동산을 사지 않고, 반값이 될 때까지 폭락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정말 아파트가 폭락했을 때 난 어떻게 대응할지 대비를 해두어야 한다. 서울 시내에 반값으로 추락한 아파트가 널브러져 있을 때, 모든 물량을 자본에게 뺏기기 않으려면 실탄을 지금부터 모아 나가야 한다. "6억 아파트? 3억까지 떨어질 거야'라며 심리적 위안만을 삼을 게 아니라 어서 빨리 3억 원을 모아 놓고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이 순식간에 다 쓸어 갈 것이다. 한 가지 더. 대한민국 아파트는 사실은 하방 버팀목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전세다. 집값이 무너져도 결국 전세 가격에서 만난다....  따라서 이런 식의 구도라면 집주인은 주택 담보대출로, 세입자는 전세담보대출로 계속 이자만 갖다 바치다가 최종 순간에는 모두 한꺼번에 무너져 버릴 수 있다. .따라서 최소한 "전세 가격만이라도 빚 없이 모아 놓겠다."라는 독한 마음을 먹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p159

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을 이기는가. 실은 매우 간단하다. 시스템 곳곳에 포진돼 있는 그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건 마치 "담배를 어떻게 끊어요?"라는 질문에 "그냥 끊으면 돼"라는 답변과 유사한 구조다. 속임수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으로 속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p235

자본에 관한 불편한 진실★★★☆(정철진, 아라크네, 2012.12.10) Oct 27, 2017

Zack's Comment

쉽사리 실체를 보이지 않는 '자본'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목표는 '승리'가 아닌 '생존'이고, 달콤한 자본의 속삼이에 속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또한 어차피 절대적으로 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 승부는 의미가 없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인간 개개인은 언제나  본인은 객관적이고 냉정하며 현명한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 과정과 결과 또한 희망적일 거라는 확신 혹은 자기 체면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인정하고 쉽지 않지만 인생의 많은 순간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선호하며 그 제한된 사고의  범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 좁은 사고의 폭과 세월의 고집이 합쳐져서 폭넓은 인생의 재미를 느낄 겨를도 없이 어느새 인생의 후반부를 시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본', '돈', '재테크' = '행복'이라는 등식의 답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행복으로 향하는 또 다른 답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위 조건들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때로는 정답에 가깝기에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은 그곳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본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시장, 자본, 환율, 세금, 아파트, 달러에 대한 분명한 경제 서적이다. 그 불편한 진실을 명확히 파헤치기 위해 이제는 경제에 대한 실직적인 투자와 수익률에 대한 실용서적을 찾아봐야 할 때인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인 대답은 No. 그 또한 나의 좁은 사고의 오류인지는 모르겠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올가을부터 읽고 있는 1899년 출판된 1,000페이지가 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방대한 분량에 너무도 세심한 인간의 심리와 사랑, 욕망, 질투, 신념 등 너무도 복잡한 인간의 감정 묘사에 완독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느린 템포로 천천히 탐독하고 있는 그 과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불편한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유한한 인생 속, '행복'과 '지혜'를 또한 발견할 수 있으리라.

Thursday, October 19, 2017

[Zack's BookCafe] 인간 실격

부끄럼 많은 생을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즉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괴로운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하지도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에는 상쾌할까? 어떤 꿈을 꿀까? 길을 걸으면서 무얼 생각할까? 돈?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돈 때문에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아닐 거야. 그러면 어쩌면.... 아니. 그것도 알 수 없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나한테 처세술의 재능이라니! 그러나 저처럼 인간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속이는 것도, 건드리지 않으면 탈이 없다느니 하는 똑똑하고 교활한 처세술과 마찬가지 얘기가 되는 걸까요.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弔詞)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p84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p122

인간 실격★★★(다자이 오사무,(주)민음사,2017.7.19) Oct 19, 2017

Zack's Comment 

<人間失格>
- 실격(失格) :
1. 격식에 맞지 아니 함.
2. 기준 미달이나 기준 초과, 규칙 위반 따위로 자격을 잃음.

- 익살 :
남을 웃기려고 일부러 하는 말이나 몸짓.

1900년대 초 일본의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독특한 성격의 주인공 요조. 그는 극심한 대인관계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익살'이라는 다소 과장된 연기로 인생을 살아간다. 자기 내면의 울림과는 상관없이 행해지는 그 익살은 대인관계에 꼭 필요한 가면(페르소나)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그의 마음속 부정적 자아와 가식에 가린 탐욕이 난무하는 세상과의 괴리가 너무 큰 나머지  그의 인생은 그 시절 '인간'이 정해 놓은 기준에 미달되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삶이라고 자평하고 인간 실격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100여 년 전 시대 현실을 반영한 소설 속 주인공의 고뇌와 방황을 훔쳐보며 느껴지는 왠지 모를 애잔함은 '인간'이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화지 않는 내면의 그 무언가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며 인생을 고민하는가?
인간 실격, '인간'으로써의 자격 미달이라는 부정적 메시지 너머로 과연 유한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긍정적 고민의 메시지 또한  남겨 본다. 

Thursday, October 12, 2017

[Zack's BookCafe]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에도시대 일본 사회는 도시화, 자본화, 시장화의 진전으로 기존의 지식, 사상으로는 더 이상 대응하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계속 직면하였고, 이러한 한계 상황을 맞아 지식인들이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견고한 지적 토대가 구축되었다. 신분을 넘어 각 지역별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지식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현상은 일종의 지식시장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놓은 과학기술, 인문, 사회과학 수준을 자랑하는 현대 일본의 지적 역동성과 다양성은 지식이 독점되지 않고 공론의 장에서 경합한 에도시대 지식시장의 태동胎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p235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억울'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抑鬱'이라고 쓴다. 일본에도 같은 단어(よくうつ, 구야시이)가 있다. 한국어와의 차이점은 일본의 '억울'은 정신병리학 상의 용어로 심하게 기분이 침체되어 있는 'deep depression'의 심리상태를 말한다. 한국어의 '억울하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남의 잘못으로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나쁜 처지에 빠져 화가 나거나 상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일본어의 '구야시이'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남과의 경쟁에서 패하건, 남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여 분하거나 유감의 심정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되지만, '구야시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남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야시이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억울함은 '한恨'으로 이어진다. 한국인의 '한'은 복수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어쩔 수 없음을 스스로 삭혀야 하는 속절없는 원망과 체념의 심정을 내포한다. 일본의 구야시이도 '한'으로 연결되지만, 이는 '통한痛恨'의 의미로서 자신을 바꿔 자신을 분하게 만든 상대에게 설욕하겠다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의 결의를 내포한다. 그래서 한국의 '억울하다'에 비해 일본의 '구야시이'가 더 강렬한 심리적 에너지장을 형성하고 현실의 변화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은 심리이다. 지나친 단순화이지만, 한국과 일본 간에는 그러한 심리와 성향의 차이가 있고, 그것이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p269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신상목,뿌리와이파리,2017.7.24) Oct 11, 2017

Zack's Comment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에도시대
[江戶時代(강호시대) ]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세이이 다이쇼군[征夷大將軍]에 임명되어 막부(幕府)를 개설한 1603년부터 15대 쇼군[將軍] 요시노부[慶喜]가 정권을 조정에 반환한 1867년까지의 봉건시대. 정권의 본거지가 에도[江戶:현 도쿄]였으므로 이렇게 부르며, 또한 정권의 주인공인 도쿠가와의 성을 따서 도쿠가와시대라고도 한다. 이 시대는 가마쿠라[鎌倉]시대에 이룩되기 시작한 봉건사회체제가 마지막 마무리를 거쳐 확립된 시기이며, 무사계급의 최고지위에 있는 쇼군이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전국을 통일지배하는 집권정치 체제가 확립된 시기이다.

한국인에게 영원히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을 정도의 치욕을 안겨 준 옆 동네  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훔쳐본다.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갈등 속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안겨준 통한의 역사에만 방점을 찍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 상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키워가기보다는 그 원인을 상대가 아닌 나 자신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만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할 강력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것은 우리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인생의 실패를 이겨내는 현명한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현자는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외부에서 찾지 않고, 조금은 아프지만 자신을 책망하며 통제 가능한 진정한 내면의 변화를 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