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럼 많은 생을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즉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괴로운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하지도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에는 상쾌할까? 어떤 꿈을 꿀까? 길을 걸으면서 무얼 생각할까? 돈?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돈 때문에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아닐 거야. 그러면 어쩌면.... 아니. 그것도 알 수 없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나한테 처세술의 재능이라니! 그러나 저처럼 인간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속이는 것도, 건드리지 않으면 탈이 없다느니 하는 똑똑하고 교활한 처세술과 마찬가지 얘기가 되는 걸까요.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弔詞)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p84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p122
인간 실격★★★(다자이 오사무,(주)민음사,2017.7.19) Oct 19, 2017
Zack's Comment
<人間失格>
- 실격(失格) :
1. 격식에 맞지 아니 함.
2. 기준 미달이나 기준 초과, 규칙 위반 따위로 자격을 잃음.
- 익살 :
남을 웃기려고 일부러 하는 말이나 몸짓.
1900년대 초 일본의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독특한 성격의 주인공 요조. 그는 극심한 대인관계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익살'이라는 다소 과장된 연기로 인생을 살아간다. 자기 내면의 울림과는 상관없이 행해지는 그 익살은 대인관계에 꼭 필요한 가면(페르소나)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그의 마음속 부정적 자아와 가식에 가린 탐욕이 난무하는 세상과의 괴리가 너무 큰 나머지 그의 인생은 그 시절 '인간'이 정해 놓은 기준에 미달되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삶이라고 자평하고 인간 실격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100여 년 전 시대 현실을 반영한 소설 속 주인공의 고뇌와 방황을 훔쳐보며 느껴지는 왠지 모를 애잔함은 '인간'이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화지 않는 내면의 그 무언가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이며 인생을 고민하는가?
인간 실격, '인간'으로써의 자격 미달이라는 부정적 메시지 너머로 과연 유한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긍정적 고민의 메시지 또한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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