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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18, 2019

[Zack's BookCafe] 쇼코의 미소

<싼짜오 싼짜오 >
그저, 가끔 말을 들어주는 친구라도 될 일이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곁을 줄 일이었다. 그녀가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 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 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p92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할머니는 일생 동안 인색하고 무정한 사람이었고, 그런 태도로 답답한 인생을 버텨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해고, 그런 태도를 경멸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무정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고통을 나눠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p105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 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p116

​<한지와 영주>
우리는 싸움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를 견뎠다. 감정을 분출하고 서로에게 욕을 해서 그 반동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싸움도 일말의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나쁜 건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 무지 안에 있었다. p129

쇼코의 미소★★★☆(최은영,(주)문학동네, 2016.7.7) Jan 17, 2019
Zack's Comment

<최은영 작가 단편 소설집>
쇼코의 미소  p7
싼짜오, 싼짜오 p65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p95
한지와 영주 p123
먼 곳에서 온 노래  p183
미카엘라 p213
비밀 p243

<한 줄 평>
최은영이라는 섬세한 여성 작가의 시선을 통해 '공감'이라는 인간 내면의  잔잔한 그 고유의 정서에 매료된다.  

2019년 어느 날..
함께 '공감'하고 '공유'  할 수 있는 그 흥분되는 정서적 가치를 갈망하며..

Friday, January 11, 2019

[Zack's BookCafe] 어쩌다 한국인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며, 근사한 요리 실력을 소유하고, 사회적 정의에 민감하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유럽 국가나 미국 중산층의 기준 역시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성공과 무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p48


한국 사람들은 일대일의 개인적 관계를 가장 중요시하는 관계 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관계 주의는 조직과 인간의 관계가 아닌, 일대일의 대인관계적 맥락에 더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존재와 정체감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 규정되며, 따라서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규정하는 맥락성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즉, 맥락에 따라, 특히 누구랑 있느냐에 따라 적절하게 바뀔 줄 아는 센스 있는 사람이 바로 한국인의 이상형이다. p165


한국 부모들과 외국 부모들은 사실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외국 부모들도 자녀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고, 잘하면 좋아하고, 가능한 한 학업을 지원하며, 자녀가 여러 면에서 성공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런데 큰 차이는 한국 부모들은 청소년인 자녀가 놀고 있는 걸 못 본다는 것이다. 종종 그들은 자녀에게 얘기한다. "너무 즐거운 거 아니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라고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과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과연 이런 주장은 정말 근거가 있는 것일까? p215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인고의 착각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 사람들은 불안하니까 그냥 아무거나 한번 해 보려 한다. 아니, 남들이 하는 걸 그냥 따라 한다. 매도 같이 맞으면 덜 아프니까. 아마 지금 자녀 사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 많은 한국의 부모들은 사실 그것 이외에 뭘 해야 할지 모르기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불안하기에 그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녀를 위해 스스로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나중에 자녀가 성공할 거라는 인고의 착각에 빠진 채로...  p220

일반적으로 여러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선택 행위의 결과는 하나를 얻진만 동시에 반드시 그 이상의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결과를 수반한다. 결혼하는 순간, 이 세상의 30억이 넘는 이성을 포기해야 한다. 대학 입시에 지원서를 내는 순간, 지원하지 않은 수많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현실에서는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많고 크다. 그래서 원래 선택의 과정에서 가지는 것에만 목숨을 건다. 그러니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p308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한 청년의 비율로만 보자면 위에서 말한 선진국들도 한국 사회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차이는,  그들은 스스로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할 기회를 어려서부터 아주 체계적으로 제공받아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 자체를 포기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이 포기한 세속적인 성공을 대체할 만한 수많은 다른 가치를 사회로부터 제공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종교, 문화, 예술, 봉사 등의 무엇이든 간에, 어려서 버터 세속적인 성공을 이룰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간직할 수 있게 해준다. p328


우리는 그 물건이 가져다줄 놀라운 경험을 원하는 것이지, 물건 그 자체는 경험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TV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기쁘고, 웃고, 슬픈 경험을 하기 위한 수단이고, 전화기는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수단이며, 자동차는 멀리 있어서 못 보던 것을 보고 못 만나던 사람을 만나기 위한 수단이고, 집은 따뜻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같은 맥락으로 명품은 그것을 소유하는 기쁨과 자부심을 경험하게 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 궁극적 목적인 경험을 잊어버리고, 물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왜? 물건이 경험을 통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p385


 어떤 대학교수는 취업하기 힘든 요즘 같은 시대에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취업에 필요한 실질적인 지식을 알려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먹고살기 힘든 현실에서 인문학은 사치이고, 어차피 대단한 인문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인문학을 얘기할 때냐고, 하지만 한국의 교육에서 제일 부족한 것이 바로, 왜 취업을 해야 하고, 왜 공부를 해야 하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찰과 자신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고민을 통해 스스로 정한 무엇인가를 얻어야 되겠다는 결정을 한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얻을지 배워도 된다. 인문학은 결코 교양도, 수단도 아니다.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p393

어쩌다 한국인★★★☆((허태균, 중앙일보 플러스(주),2015.12.7) Jan 10, 2019

Zack's Comment

어쩌다 어른..
어쩌다 한국인..
'어쩌다'라는 말이 너무나 친숙하게 느껴진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화들짝 놀란 것일까?  아니면,
생각지 못한 인생의 방향에 속수 무책으로 휘둘려 가는 그 상황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워서 일까?

"어쩌다 보니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었어... "
분명 내 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믿고 있던 어떤 '자아'의 자조적 변명을 들어 본다.

언제나 그 시대가 원하는 세속적인 가치가 있다. 2015년 쓰인 어쩌다 한국인을 2019년에 읽어 보게 되었다. 앞으로 2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분명한 것은 어쩌다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는 것이고, 그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나를 지배하는 '세속적 자아'의 모습 또한 점검할 수 있었다.

​앞으로 10년 후, 새로운 어떤 가치가 내가 사는 그 집단의 지배적 가치가 될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새로운 정답에 가까운 집단의 가치와 목표가 있을 것이고, 그때의 내 모습은 어쩌다 나이가 더 든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왜?"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그 삶에 대한 그 시대의  정답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아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철학'이 있는 매력적인 모습이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 시대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더욱 강화된 세속적 가치로 상대적 박탈감이 가득 차 있을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상대적 불행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 상대적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손에 잡히지 않는 세속적이고 감각적 행복이 아닌 인생 전반에 지속 가능한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Zack,
You have to ask WHY you're doing it even if it cannot be changed right now.
Someday, you can have a chance to know what you want.
Love yourself and figure out what you really want continuous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