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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August 18, 2017

[Zack's BookCafe] 머저리 클럽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누구든 나를 인정해 주리라는 기대 속에서 자기 자신에 속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무거운 책가방 속에 수학 책이, 영어책이 들어 있듯이 왜 우리는 무거운 의무를 지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손에 손금을 안고 있으나 그 무게는 느끼지 않는다. 손금처럼 지울 수 없는, 그러면서도 무게를 느끼지 않는 승혜에 대한 나의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일까. p231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p279  (낙화, 이형기)

아아, 우리들의 시대, 열아홉 살엔 왜 이렇게 구속이 많은 것인가. 아아, 우리들의 시대, 열아홉 살엔 왜 이렇게 지켜야 할 의무도 사명감도 많은 것인가. 보라. 바깥세상은 우리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다. 하늘엔 구름, 뜨거운 햇살.....  아아, 우리들의 시대, 열아홉 살엔 왜 이렇게도 우울한 일이 겹치고 있는 것인가. p358

우리는 마치 애어른 같은 모습으로 멍하니 창밖에 내리는, 아니 가슴으로 내리는 비를 쳐다보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학력고사, 졸업식, 입시, 그러면 우리는 마음대로 다방에 가고, 담배도 피우고, 영화관에도 가는 어른의 시대를 맞이한다. 아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지나간 과거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마치 TV에 슬로우 비디오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재현시키듯 우리 자신들의 빛나는 과거를 다시 보여줄 수 있다면. p384

머저리 클럽★★★☆(최인호,랜덤하우스코리아(주),2008.7.25) Aug 17, 2017

Zack's Comment

무언가 부족한 '결핍'을 느끼며 채워지지 않은 호기심과 열정을 간직하던 그 시절을 훔쳐보다. 철없이 놀던 그 시절의 우리는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로맨틱한 꿈을 간직한 어리숙한 모습이었고, 그 모습은 머저리에 가까웠다.

그 더딘 시간의 흐름을 이겨낸 우리는 어느새 어른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마음대로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며 그 누구도 간섭도 없는 자유의 세상이다. 그렇게 갈망하던 이곳에는 왜 이리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가득한 것인가.

넘치는 자유를 손에 꼭 쥐고, 그 자유를 만끽하지도 못하며,  방황하다 남들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 짦은 한숨은 어른의 시대의 또 다른 모습의  '결핍'으로 다가온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철없고 이유 없이 짜증 나던 열아홉 살. 그 시절을 그리워하듯, 언젠가는우리는 한없이 부족하고 답이 없는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백번 말해도 이것은 진리에 가깝다.
"오늘을 살자. 행복하게...  비록 그 모습이 머저리 같을지라도..."

Wednesday, August 9, 2017

[Zack's BookCafe]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혼자 산다는 문제를 가족이라는 틀의 범주에 놓고 파악하는 이상, 혼자 산다는 문제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살펴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범주가 중심에 놓이는 순간, 우리는 객관적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흔히 상실한다.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거나 때로는 한없는 기쁨을 연상시키는 매우 감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단어이다.... '혼자 산다'라는 진술은 불가피하게 부정적 의미를 가진 진술이요,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된다. 심각한 우려와 결핍의 시선이 따라다니는 진술이라는 얘기다. p53

아빠로서의 일과 엄마로서의 일, 남편으로서 일과 아내로서의 일, 사위로서의 일과 며느리로서의 일은 여전히 구분된다. 한 개인이 외부에서는 직장인이어야 하고 돌아오면 사적 공간에서의 역할을 참조해야 한다. 개인이 참조해야 하는 타인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개인이 연출해야 하는 페르소나의 숫자가 늘어나면 다른 부분은 줄어든다. 객체로서의 자아가 커치면, 즉 역할 밀도가 짙어지면 주체로서의 자아는 작아지고, 그 결과 자기 밀도는 제로에 가까워진다. 자기 밀도가 제로에 가까워질 때, 같이 사는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서 자유의 향기를 느낀다. p89

4인용 테이블에 있는 사람은 아무 때나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결혼하지 않은 혹은 못한 이유를 물어도 되는 자격증을 지닌 사람처럼 행동한다.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은 4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왜 결혼하였어요?"를 묻지 않는데 그 반대 경우는 언제든 허용된다. 4인용 테이블 사람은 특권이라도 지닌 것처럼, 그리고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기라도 하는 양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왜 혼자 사는냐고 1인용 테이블과 4인용 테이블 사이에는 개인 간 능력의 격차도 성실성의 차이도 없지만, 양적 다수를 차지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궁금증 억제의 법칙을 쉽사리 잊어버린다. p106

문제는 균형이다. 균형 잡기는 사실 판단에서 나온다. 싱글은 반드시 화려하지도 않고, 반드시 위험하지도 않다. 또한 싱글은 화려할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다. 위험은 줄이고 화려함을 키우는 방책이 바로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 꽃을 피우는 처세술이다. p139

개체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개체는 개체마다 다 복잡적이다. 하지만 과도한 타자 관계가 개체를 지배하면 그 관계는 개체를 단순화시킨다....  그리하여 수도권의 30평대 아파트에 살며, 소나타를 몰며 4인용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은 어느 날 나는 누구인가라는 갱년기의 질문에 부딪혔을 때 쉽사리 붕괴될 수 있다. 갱년기를 겪어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사춘기는 연습에 불과했음을. p150

개인은 모나드이다. 감정을 느끼는 촉수는 개인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섹스가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일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감각을 느끼는 촉수를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두 개의 모나드가, 동시에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아주 드문 순간을 섹스가 제공해준다. 오르가즘은 신체적 커뮤니케이션의 절정이라면, 공감은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절정이다. 인간의 존재방식이 근원적으로 개별적인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에게 공감의 순간은 더 크게 느껴진다.... 공감으로 향하는 길은 과장된 리액션이 아니라, 모나드로서의 자기 존재를 깨달은 모나드들이 서로 조우할 때 싹튼다. p172

혼자라는 것은 같이 있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분명 결핍이다. 같이 있다는 것은 혼자 있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충족이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틀로 비추어보면, 행복은 혼자 있을 때와 같이 있을 때 어느 한쪽과 일방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행복이란 혼자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결핍에서 벗어날 때, 그리고 같이 있을 때 발생하는 과잉 충족으로 인한 질직에서도 동시에 벗어날 때 가능하다. p191

모든 사람은 집단에 소속되려는 욕구만큼이나 개체가 되려는 욕구 또한 갖고 있다. 단독인의 사회란 달리 말하면, 모두가 혼자 살라고 선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를 통합하는 힘과 개체가 되려는 힘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 개체가 되려는 힘을 갖고 싶어 하는 개인이 가족  환경이나, 집단의 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p236

국가나 집단은 개인을 대신하여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집단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개인을 대신하여 집단이 판단을 내리고 최종적으로 개인은 집단이 내린 판단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설계한다는 점이다. 집단주의에 의해 판단이 내려지는 이상, 개인의 삶은 표준적 삶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p249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사월의책,2013.10.1) Aug 08, 2017

Zack's Comment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화려한 싱글도 행복한 결혼도 없다"라는 씁쓸한 결론적 한 줄 평을 남겨본다.

*모나드(monad) :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적인 실체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적 실체인 개인은 모나드이다. 그 모나드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안전망인 집단 공동체 속 다수에 선택된 4인용 테이블. 우리는 특별한 고민 없이 그 4인용 테이블에 입성하여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맛본다. 그러나 모나드로서의 자기 존재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만난 두 개의 모나드는 예상하지 못했던 각자에 역할 밀도에 숨 막혀하며 혼자 일 때는 결핍이라고 느껴 왔던 그것이 어느새  과잉 충족이 되어 당황하기도 한다. 그 결과 다시 혼자가 되기를 선망하며 그 선택을 실행으로 옮기거나 고독한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어쩌면 4인용 식탁에서 여유로운 척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라도 한 양 천연덕스럽고 무례한 질문(왜 결혼 안 하셨어요?)을 남발하던 모나드들은 그저 '혼자'이기에 이유 없이 따가운 시선을 받는 불편함에 버금가는 숨겨진 내면의 외로움에 힘겨워 하면서 한때는 부러움에 대상이던 안정적인 4인용 테이블에 앉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세월에 떠밀려 그 누군가와 함께는 하고 있지만 열정도 사랑도 없는 갱년기를 맞이하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화려한 싱글도 행복한 결혼도 없다는 명제는 정답에 가깝다. 그 불편한 진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끝없는 질문 속에서 각자가 가진 모나드의 실체를 깨닫고, 저마다의 현실 속에서 삶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