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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rch 11, 2017

[Zack's BookCafe] 홀

오기와 아내는 장모와 장인의 뒷모습을 보며 말없이 복도를 빠져나왔다. 두 사람이 세차가 잘 된 검은 세단을 타고 떠난 후 오기는 아내가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렸으나 아내는 때마침 들어서는 택시를 향해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은 아내가 아니라 오기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기는 아내에게 위로받고 싶어 했지만 아내는 오기에게 사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내는 어떤 것도 사과하지 않았다.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는지 모른다. p62

오기가 생각하기에 죄와 잘 어울린다는 것만큼 사십 대를 제대로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 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거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즉 사십 대는 권력이나 박탈감, 분노 때문에 쉽게 죄를 지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오만해서 손쉽게 악행을 저지른다. 분노나 박탈감은 곧잘 자존감을 건드리고 비굴함을 느끼게  하고 참을성을 빼앗고 자신의 행동을 쉽게 정의감으로 포장하게 만든다.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십 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p78

아내가 소설책을 읽다가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오기는 아내의 표정을 다 알아챘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졸려? 그만 잘까?"
"아니."
"그럼 왜 그래?"
"슬퍼서...."
"응?"
아내가 방금 책에서 읽은 것을 천천히 얘기했다. 한 남자가 간발의 차로 죽음의 위기를 면한 이야기, 어느 날 바로 제 앞으로 공사 중인 건물에서 건축 자재가 떨어져 내리고, 그 순간 사고를 당하지 않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비로소 뭔가를 생각하게 된 사내 이야기였다.
"그게 왜 슬퍼. 다행인 거지."
"그 사람이 사라져. 은행의 돈도 그대로 두고 직장에 사직서도 내지 않고 누군가 만나기로 한 약속도 취소하지 않고, 그냥 사라져,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어떤 암시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사라져. 어느 날 갑자기. 누구도 찾을 수 없게. 아내가 남편을 찾아달라고 탐정에게 부탁해. 어딘가에서 다친 건 아닐까, 의식을 잃어서 가족의 기억을 완전히 잃은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그게 아니면 남편이 사라진 걸 납득할 수 없으니까. 탐정이 얼마 후에 그 남자를 찾아내. 무사히 살아 있어. 다른 도시에서, 이름을 바꾸고 직장을 구해서 살고 있어. 새로 생긴 가족과 함께."
"아내가 싫었나 보네."
"그보다 뭔가를 알게 된 것 같아."
"뭘?"
아내가 대답 대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기가 재빨리 되물었다.
"다른 곳에서도 잘 살 수 있다는걸?"
아내는 이번에도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오기는 초조해 졌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어떻게 됐어?"
"그게 끝이야."
"이전 가족한테 안 돌아왔어?"
"절차를 밟아 이혼했대."
"너무했네. 그래서 행복했나?"
갑자기 아내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눈물이 조금 맺히는 정도였는데 이내 소리 내어 울었다. 왜였을까. 어느 날 운 좋게 살아남은 남자 때문에, 갑자기 저 너머로 가버린 남자 때문에, 그곳에서도 별다르지 않은 삶을 이어나간 남자 때문에 울었을까.
우는 아내를 보며 오기는 웃었다. 이게 슬픈가. 겨우 이런 얘기로 우네. 아내가 이렇게 감성적이었나.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다래고 싶었다. 우리는 무사할 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너머로 홀로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허튼 약속 없이, 섣부른 이해 없이 아내를 슬픔에서 천천히 건너오게 하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나중에야 들었다. 오기는 미래의 슬픔을 이미 겪은 듯한 아내를 가만히 안아주었고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다가 그쳐가는 걸 지켜봤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p206~p209

홀 The Hole★★★★(편혜영, (주)문학과지성사, 2013.3.23) Mar 10, 2017

Zack's Comment

전혀 다른 세상 속에서 살던  남녀가 만나 결혼이라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끈으로 새롭게 맺어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상의 오해와 갈등을 비극적인 스릴러로 녹여내다.

남녀관계, 그중 우리가 특별한 관계라고 믿고 있는 부부관계는 오류 투성이다.
타인이던 남녀가 이성을 잃고 '사랑'이라는 신기루를 믿고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관계의 시작과 동시에 믿고 있었던 그 불안정한 '사랑' 속에 비극의 씨앗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하여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알랭드 보통-

기쁨이 아닌 슬픔의 동반자가  간절히 필요했던 오기의 아내.
그 슬픔의 눈물을 멈추게 하고 싶었던 오기.
아내의 슬픔을 안아주었고 울음은 멈추었다.
하지만 그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는걸.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홀, The Hole 한 줄 평>
짤지만 강렬한 주제의 소설 속에서 왠지 모를 관계의 허무함과 슬픔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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