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다양한 영역을 모험하는 가장 괜찮은 방법은 불편한 책을 읽는 것이다. p17
여행을 통해 내가 보고 배운 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었다. 감추사에는 붓다가 아니라 주지스님이 있었고, 교회에는 신이 아니라 신자들이 있었으며, 시장에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은 형이상학적인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는 공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체적인 삶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 자명하고 단순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p136
그래서 비극은 시작된다. 그 비극은 부모로부터 아이에게로 전달된다. 소중한 가정을 위해 스스로 하나의 노동자로, 하나의 전문가로 살아가기를 결심한 부모는 결국 자녀의 가슴에 슬픔을 남긴다. 자신의 날개와 다리를 자르고 우물을 파 내려가는 부모의 영혼은 거울 같은 자녀의 영혼에 깊은 잔상을 남긴다. 만약 인간에게 원죄라는 것이 있고, 그 원죄가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이라면, 원죄의 본질은 자녀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부모의 잔상이다. 날개와 다리를 스스로 꺾은 채 우물을 파내려 가는 부모의 뒷모습. 그 뒷모습은 자녀가 자신의 날개와 다리를 스스로 꺾어야 할 당위와 필연을 제공한다. p168
지금은 안다. 이렇게 불안하고 조급한 시간들도 개인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임을 말이다. 우리는 선입견이 있다. 내면의 성숙은 고결한 방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선입견.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어려운 철학 책과 씨름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사색하는 아름다운 방법만이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옳은 말이다. 우리는 실제로 그러한 시간 속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얻지 못하는 절반의 배움이 있다. 고결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세계에서의 경험들. 부당함에 굴복하고, 부조리에 타협하고, 옳은 주장을 꺾고, 스스로 초라함에 몸부림칠 때에만 얻게 되는 그런 배움이 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세계에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와 타인의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 p250
삶에게 원인과 결과를 묻는 건 가능하지 않아요. 삶은 받아들이는 방식으로만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당신이 선택해야 해요. 받아들여 해석할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고 고통을 지속할 것인가. p314
운 좋게도 멈춰 설 기회를 얻었으니, 뒤 돌아가서 놓고 온 것들을 챙기세요.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세요. 또다시 허둥지둥 달려오면 안 돼요. 길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을 돌보면서 오세요. 그렇게 천천히 인생의 마지막에 닿았을 때,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삶이 당신에게 정말 주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에요. p316
허망해하지 마라. 너는 잘하고 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해라. 미련과 아쉬움과 후회를 만들지 마라.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를 심판하는 존재 같은 것은 없다. 삶과 죽음이 바로 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p359
열한 계단 ★★★☆(채사장,(주)웨일북, 2016.12.10) Mar 15, 2017
Zack's Comment
종교와 과학,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등 우리 삶 속에 명확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들.
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통해 한 인간으로서 삶을 고민하는가?
'물질 만능'이라는 지상 과제 앞에 선 전 세계 인류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기인한 모습의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불특정 다수가 알려준 우리에게 익숙한 그 길이 아닌 조금은 불편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저마다의 '계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과 거부할 수 없는 '이상' 사이에서 표류하지 않고 항해하는 사람이 되기를...
그 항해에의 마지막에 닿았을 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삶이 우리에게 정말 주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