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들은 논 옆에 있는 마을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은 '바딘'이라는 곳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가난하고 행복했다. p49
일단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18세기 베트남을 향하여 배를 타고 떠난다. 마음 착하고 신앙심 깊은 이 여자 남자들은 미지의 당을 찾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들은 일 년이 넘게 걸려서 비로소 사이공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에 그들은 남쪽 지방의 농사꾼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그런데 한편 프랑스는 동방으로 떠난 선교사들을 까맣게 잊고 산다. 선교사들은 그동안 모든 것을 버렸고 모든 것을 다시 배웠다. 베트남의 특유의 습기와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그들을 모두 딴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그 땅에서 살고 죽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p155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유,(주)문학동네,2006.9.30) Nov 17, 2017
Zack's Comment
소설의 원제는 ANNAM (安南) : 중국인이 베트남을 가리켜 부른 명칭.
별다른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어도 베트남과 프랑스는 직감적으로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든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인 듯하다. 커다란 역사의 흐름을 따라 특별한 갈등 구조 없는 삶과 죽음을 서술하는 저자의 간결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때때로 소설에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큰 흐름이나 메시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꽂히는 문장이나 감정들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짧고 간결한 소설에 대한 개인적 코멘트를 남겨본다.
1. '베트남 사람들은 가난하고 행복했다.'라는 문장이 가슴에 꽂힌다. 오타인가? 왜 그동안 '가난하지만 행복했다.'라는 확정에 가까운 문장만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었던 것일까? '가난'이란 '행복'의 반의어가 아닌 우리가 처한 어떤 상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담은 무심한 문장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은 도무지 잡히지 않는 현재의 어떤 결핍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2.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고 그 테두리 안에서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삶의 믿음과 명분을 만들어 살아간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 작은 세상이자 나라가 되고 대부분의 우리는 그 나라 안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다다를 수 없는 나라'가 세상 저편에 있다면 그동안 믿었던 믿음과 신념을 버리고 그 새로운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일생 동안 우리가 믿었고, 믿고 싶은 그 나라(신념)에 갇혀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맛보지 못하는 불행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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