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20
어두운 극장의 구석 자리에 앉아 어머니가 보고 있었던 것은 영화가 아니라 스크린일 뿐이었다. 영사기가 돌며 보여주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이었고 그동안 어머니의 왼쪽 가슴 아래에서는 자기 삶에서 고통을 추출하는 원심분리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고통의 분량이 많을 때는 영화 상영 1회분의 시간을 더 설정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매번 영화가 끝난 뒤 고통이라는 침전물이 담긴 자신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환한 극장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 몫의 인생 속으로 태연히 되돌아갔던 것이다. p72
많은 기자들은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사례만으로 자기의 편견을 일반화할 뿐이지만 전문가들은 더 나아가 거기에서 규칙을 발견해내서 자신의 신념체계로 대중을 속이기를 좋아했다. p143
새로운 여자란 마치 티백 속의 마른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처럼, 말라버린 채 얇은 종이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의 존재를 되살아나게 했다. 그리하여 손끝까지 따뜻한 기운이 돌고 향기가 온몸을 채우는 것이다. 상대에게 가까워지고자 하는 의지는 상대와 같아지려는 동기를 유발하는데 그것을 추동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그처럼 낯섦이 자신에게로 옮아오는 변화 과정의 이물감이야말로 요셉이 원하는 살아 있는 자의 실감이었다. 남녀관계에서 요셉은 그 시작의 그 느낌을 가장 좋아했다. 그것은 짧기에 더 강렬했다. 시간이 지나면 패턴이 되어 지겨워지게 마련이었다. 사랑이 식는 것은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상대가 고유성을 잃고 다른 누구와 다를 것 없는 덤덤한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p161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p265
태연한 인생★★★ (은희경, (주)창비, 2012.6.11) : Nov 9, 2016
Zack's Comment
<태연한 인생 한줄 평>
류와 요셉이라는 남녀의 사연 많은 러브 스토리 안에 너무도 태연하게 '사랑의 고독과 허무함'을 담아낸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타인과의 오해는 시작되는 되었던 것이다.
다만, 뜨겁게 사랑하는 그 순간 그 '오해'로 야기되는 수많은 문제점들은 잠시 자취를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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