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3
1945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1980년대에 이르자 이 비율은 17%로 줄었다. 이 시기에 어떻든지 집에서 죽은 사람들은 병원에 가지 못할 만큼 갑작스럽게 일을 당했을 공산이 크다 말하자면 중증 심장마비, 뇌졸중,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거나 너무 고립되어 있어서 도움을 구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얘기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선진국에서도 노화와 죽음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겪는 일이 됐다. p16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실버스톤 박사의 표현대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이다. 필립 로스는 소설 에리리맨에서 이를 더 비통하게 표현했다. "나이가 드는 것은 투쟁이 나이다. 대학살이다." p94
젊고 건강할 때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믿는다. 가지고 있는 기능과 능력을 잃을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세상은 내 손안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못 해낼 일이 없다." 젊은이들은 현재의 즐거움을 기꺼이 뒤로 미룬다. 이를테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술과 자원을 얻는 데 몇 년이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들은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더 큰 물결에 연결되고 싶어 한다.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친구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를 넓히는 일에 몰두한다. 삶의 시야와 한계를 몇 십 년 단위로 판단할 때, 어쩌면 인간에게는 그것이 무한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이때 우리는 매슬로의 피라미드에서 맨 위에 자리 잡은 것들, 즉 성취감, 창의성, 그리고 '자아실현'에 필요한 여러 속성들을 추구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삶의 시야가 축소되어 눈앞의 미래가 불확실하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삶의 초점은 지금, 여기로 변화하게 된다. 일상의 기쁨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옮겨 가게 되는 것이다. p156
바로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p172
의학은 죽음과 질병에 맞서 싸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단순한 시각이 있다. 물론 그것이 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 그러나 죽음이 적이라고 한다면, 그 적은 우리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결국은 죽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면, 우리는 아군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는 장군을 원치 않는다. p286
왜냐하면 의사들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다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다른 방향에 똑같이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노력을 너무 적게 하는 것만큼이나 너무 많이 하는 것도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p335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대신 오늘을 최선의 상태로 살기로 한 결정의 열매를 눈으로 확인했다. 아버지는 거의 휠체어에 의지하게 됐지만 완전히 사지마비로 치닫던 증세는 어느 정도 멈췄다. 그리고 보행 보조기를 이용해 짧은 거리 정도는 더 잘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 덕분에 하루 일상을 예측하기가 훨씬 수월해지면서 더 많은 손님들을 맞을 수 있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집에서 다시 파티를 열기 시작했다. 끔찍한 종양이 아버지에게 허락한 그 좁은 틈에서나마 살아 낼 여지를 다시 찾은 것이다. p.347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의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갖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러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나는 이게 단지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기 어려우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데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는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p355
한 사람의 종말이 가까워 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시점이 온다. 우리는 그 순간에 대해서 거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미 어려운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기를 원하는지 상세히 밝혀 두었다.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도, 고통도 원하지 않았다.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를 원했다. p384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기완디,부키(주),2015.5.29)
Zack's Comment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인도 출신 현직 의사 '아툴 가완디Atul Gawande'가 외과의로써 그이 다양한 경험과 그의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는 느꼈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느껴진다.
아이러니(Irony) 하게도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장 중요한 탄생과 죽음에 대한 개인의 삶의 통제권을 손에 쥐지 못하고,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영원할 것 같은 행복을 꿈꾸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고, 죽음과 질병이라는 적은 우리보다 강력함 힘을 가지고, 결국은 죽음이 이기에 되어 있다. 결론이 정해져 있는 삶이라는 게임 속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언급하기 조차 꺼려한다. 그저 생명 연장를 보장하는 현대 의학에 우리의 죽음을 맡기고 있을 뿐이다.
너무도 어렵고, 불편한 '죽음'이라는 주제를 강렬하고, 통찰력 있게 묘사하는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개인적인 한 줄 평을 남겨본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함과 동시에 언젠가 찾아올 '죽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인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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