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5
-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p12
-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p21
-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어도 부자가 될 수 있다. p78
- "사람들 대신 일을 해주면 그들에게서 스스로 그 일을 할 동기와 필요를 빼앗게 된다. 법을 인간 발전의 동인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과대평가다. 아무리 엄중한 법이라도 게으른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 수 없고, 낭비벽이 심한 사람을 검소하게 만들 수 없고, 주정뱅이가 술을 끊게 만들 수 없다." -새무엘 스마일스의 <자조 Self=help> 중- p111
- "자선 행위로는 개인이든 인류든 나아질 수가 없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귀한 사람은 결코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앤드루 카네기 <자서전> 중 - p112
-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p138
-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준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p157
- 비극 작품은 재앙을 피하는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동시에 재앙을 만난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끼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따라서 극장을 나설 때면 쓰러지고 실패한 사람들을 우월한 태도로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p192
- 루소는 우선 우리가 아무리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요구를 이해하는 능력은 위험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고 전제한다. 우리 영혼은 만족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대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며, 어설프게 말을 한다 해도 근거가 박약하거나 모순될 가능성이 높다. p240
-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아마 나일 강변에서 술을 마시든, 책을 쓰던, 돈을 벌든,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p276
-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p337
-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356
불안 ****(알랭 드 보통, 정영목, 도서출판 은행나무, 2011.12.28) : Feb 23, 2012
[Zack's Comment]
자본주의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현대의 일상에 대한 불안을 철학,예술,정치,종교 및 인간심리 전반에 걸쳐 통찰력 있게 분석한 한편의 논문을 읽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내내 "죽음"대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머리를 맴돌았다. 아마도 "불안" 중에 예고나 기약이 없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인간사의 최대의 불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예고되지 않은 불안 때문에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는다.
절대적 죽음에 대한 불안은 뒤로 하고,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우리는 온갖 불안을 마음속에 키우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그 불안의 원천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라는 공동체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나오는 듯 하다.
개개인 스스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여유도 없이 우리가 동등하다고 느끼는 타인 혹은 집단이 만들어 놓은 가치를 무작정 따라가고 있는 듯 하다. 뒤 따라가다 조금 뒤쳐진다 싶으면 그 불안은 스트레스라는 나쁜 에너지를 생성하고, 우리 스스로를 좀 먹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지만,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우리가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믿기 때문에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는 것이고,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몇 해 전부터 느껴지던 답답한 마음을 뭐라 딱 정의하여 말하기 어려웠고, 그 답답함은 때로 몸으로 반응하여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신의 혼란이 육체로 전이 될 때에는 나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제거 하고 싶었으나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놈은 아마도 장기 깊숙히 숨겨진 "불안"이라는 놈 이였던 것 같다. 문득 생존의 대한 불안을 제외하고 모든 불안은 충분히 내가 통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북돋아 오름을 느끼며, 그러기 위해서 더욱 건강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불태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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