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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13, 2014

[Zack's BookCafe]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2014 10

-"결국 마찬가지다. 의사는 병과 전쟁하는 사람이다. 전쟁에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 환자의 삶을 의사가 고려할 순 없다. 하지만 나는 하루라도 더 써야 한다." p15

-삶이 원래 그렇다. 환경에 보다 잘 적은 한 종(種)들과 개체들이,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종들과 개체들이 비워놓은 틈새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구에 나타났던 모든 종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지금 번창하는 종들과 개체들은 모두 태고에 살아남은 아주 적은 후손들이다. 삶은 비정하다. 자연은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누구도 사라진 것들을 슬퍼하지 않는다. p18

- 인류는 늙은 개체들이 존재하는 유일한 종이다. 자연엔 자연사가 없다. 늙으면, 사자도 하이에나의 먹이가 된다. 물론 인류 역사에서도 노인들이 두꺼운 사회계층이 된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p36

-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은 점점 나빠질 것 같다. 사회가 비교적 깨끗하고 융성하면, 무엇을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는 공대나 농대에 인재들이 몰린다. 사회가 썩으면, 관리가 되는 길을 찾아서 법대에 인재들이 몰린다. 근년에 법대의 인기는 하늘을 치받을 듯이 솟구쳤다. p51

- '삶을 마감하는 노인과 삶을 시작하는 아이가 서로 손을 흔드는 이 장면보다 더 서정적인 풍경이 어디 있으랴.' p88

- 그가 바라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이야 욕망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어서, 바라는 것이 적으면, 남들이 동정하거나 경멸할 만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뜻밖에도 많은 노인들이 행복하다는 것은 그런 사정에서 나온다. 나는 그런 행복을 대단한 것으로 여길 수 없다. p104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말대로,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이는 동물이다.' p107

- 사람의 천성은 아주 천천히 바뀐다. 진화의 손길은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사람의 천성은 점점 사회생활에 적합하게 바뀔 것이다. 한두 세대 안에 아이들의 천성이 갑자기 나빠졌을 리 없다. 문제가 있다면, 사회의 풍조와 제도에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p121

- 자신이 '모르는 줄도 몰랐던' 지식들을 대하면서, 그는 자신이 얻은 지식의 총량이 얼마나 적은지 새삼 깨달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가늠해보곤 했다. 무엇보다도, 지식은 그에게 자신이 얼마나 사소한 존재인지 가르쳤고 인류 자체도 그리 큰 뜻을 지닌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그는 지식을 얻어야 진정으로 겸허해진다고 믿게 되었다. p146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복거일,(주)문학동네,2014.03.20) Sep 13, 2014

[Zack's Comment]
지난 2013년 읽었던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라는 책의 저자 복거일씨의 자선적인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풀어 놓는다.

환갑이 한참 지난 이 시대의 노인이자 지식인 '현이립'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너무도 세련되고 멋스럽게 느껴진다. 왕년에 은행원과 연구원이란 직업으로 열심히 한 시대를 살아온 주인공 현이립은 노년에 소설을 쓰며, 이 시대의 지식인임을 자처한다.

간암 진단을 받은 지도 어느덧 3년이 된, 그는 너무도 평범한 하루를 '한가로운 걱정들'로 가득 채워가며 생에 마지막을 향해 소리 없이 걸어가고 있다. 그의 직업인 (공상과학) 소설가로써의 직업 정신을 발휘하며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너무도 멋스럽게 살아가는 주인공 현이립의 하루를 쫓아가 본다.

개인적으로 너무도 익숙한 상암 월드컵 공원과 노을공원, 한강을 배경으로 너무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한 늙고 병든 지식인이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洞察力)에 인생 후배로써 찡한 가슴의 울림이 전해진다.

2014년 가을...
어느 노인의 '한가로운 걱정들이' 결코 한가롭거나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므로 그에 대한 개인적 답변을 보류해 놓고, 20년후에 진정 한가로운 몸과 마음으로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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